◇식민지의 식탁/박현수 지음/320쪽·2만5000원·이숲
소설 ‘천안기’에 실린 삽화다. 설렁탕집에서 주인공 ‘나’와 막벌이꾼이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다. 이숲 제공
“설렁탕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이 쓴 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의 안타까운 결말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대목. 주인공 김 첨지는 퇴근길에 부인이 원하던 설렁탕을 사왔지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은 왜 하필 ‘설렁탕’을 사달라고 한 걸까. 배탈이 난 환자가 먹기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소설 배경인 1920년대에 설렁탕은 대표적인 외식 메뉴였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1920년까지 경성 안팎에 설렁탕 가게는 25개뿐이었으나 1924년엔 100군데가 넘는다. 당시 설렁탕은 한 그릇에 13∼15전. 요즘 시세로 치면 3900∼4500원으로, 서민도 크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소머리고기로 육수를 내 몸보신에 좋다는 인식도 강했다. 어쩌면 심성 고운 부인은 남편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설렁탕을 고른 게 아닐까.
장곡천정(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로)에 있던 카페 ‘낙랑파라’의 외관. 2층으로 된 목조 건물로 간판에는 ‘Design & Portrait Painting Atelier’라고 적혀 있다. 이숲 제공
이광수의 ‘무정’(1917년)에선 좀 더 이채로운 음식이 등장한다. 주인공 영채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맘먹고 탄 평양행 기차에서 일본 도쿄 유학생인 병욱을 만난다. 병욱은 상처가 깊던 영채에게 위로를 건네며 어떤 음식을 건넨다. 영채는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가 끼인 것”을 맛본 뒤 “특별한 맛은 없으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운치 있는 맛이 있다”고 느낀다.
이 음식은 바로 샌드위치였다. 일본 회사 ‘오후나켄’이 1898년부터 일본 기차역에서 팔며 ‘서구 음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조선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무정’에는 또 다른 음식도 등장한다. 영채와 정혼한 형식은 하숙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지극히 졸렬한 음식”이라고 비난한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한국 전통 문화와 서구 문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삽화에 그려진 낙랑파라의 모습으로, 박태원과 막역했던 소설가 이상이 그린 삽화다. 이숲 제공
에도시대 일본의 두부 장수 모습이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두부 장수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숲 제공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