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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쇼크’ 日물가 31년만에 최대폭 상승… ‘100엔 스시’ 사라져

입력 | 2022-10-22 03:00:00

1달러=150엔 ‘심리적 저항선’ 넘어… 원자재 수입價 급등, 물가 끌어올려
국민 체감 물가 인상률은 10% 달해… 日정부, 전기료 지원 방안 등 검토
“체질 개선 없인 미봉책 불과” 비판… 韓도 원화가치 하락 등 타격 전망



지난달 말 일본 도쿄 오타구 잡화점 ‘돈키호테’에 술값이 최대 13% 인상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지난달 일본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0% 올라 31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다. 아사히신문 제공


세계적 고물가 현상에서 예외로 꼽히던 일본이 급격한 엔저(円低) 영향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년 만에 최대 폭을 나타냈다. 엔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달러당 150엔을 넘으며 엔화 가치 급락이 현실화해서다.

한국으로서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잃어버린 30년’ 장기 침체 때문에 쉽게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일본이 인플레이션으로 소비가 위축되면 경기는 더 얼어붙고 엔저 현상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일본의 화폐 가치 하락은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가능성을 불러 국내 글로벌 자금 유출 우려를 키우며 원화 환율 상승, 국내 자산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 日 31년 만의 3%대 물가 상승

일본 총무성이 21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 2014년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상승을 제외하면 1991년 8월(3.0%) 이후 31년 1개월 만의 최고치다.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4∼8월, 5개월 연속 2%대였다.

지난해 말 대비 환율이 30% 넘게 급등하면서 수입 가격이 상승해 식료품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이 일제히 오른 영향이 컸다. 일본은행(중앙은행)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평균 10%에 달했다.

일본 1위 회전초밥 체인점 ‘스시로’는 1984년 창업 후 처음으로 ‘최저가 100엔’ 전략을 포기하고 가격을 5∼10% 인상했다. 아사히맥주는 이달 주류 가격을 6∼17% 인상했고 커피원두 ‘키커피’ 가격은 최대 20% 올랐다. 시장조사기관 데이코쿠데이터뱅크는 물가 상승으로 올해 2인 이상 가구 연간 지출액이 평균 7만 엔(약 67만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엔화 약세는 계속됐다. 전날 달러당 150엔이 무너진 엔화 환율은 이날 151.57엔을 기록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엔저에 제동을 걸 만큼 강하진 않다.
○ “일본 경제 체력 약화가 근본 원인”
일본 정부 대변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 대책을 추가로 실시하고 이달 중 종합 경제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내년에 가구별 전기요금을 월 2000∼3000엔(약 2만∼3만 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보조금 지급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크다. 마이니치신문은 “엔저로 인한 물가 상승이 지지율 저하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대증요법 말고는 뚜렷한 정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엔저 심화에는 경제 기초체력이 근본적 문제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초(超)저금리 의존도가 높은 일본에서는 경쟁력 약한 기업이 자금 지원으로 겨우 버티고 있어 성장 분야에는 자금이 말라 경제 신진대사가 막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재무성 재무관을 지낸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통화연구소 이사장은 이날 아사히신문에 “엔저의 근본 요인은 일본 국력 저하”라며 “수출로 먹고산 일본에서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정보기술(IT)은 미국 중국에 뒤처지며 약해진 국력이 간파당했다”고 말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