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등 올해 정치 여론조사기관 12개 신설 여론조사 자체가 중도·무당층 여론 형성에 영향
길진균 정치부장
여론은 존재할까? 아니면 만들어질까?
독일 나치의 선동가인 괴벨스는 “여론조사라는 것은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고도 했다. 1세기 전 그는 이미 여론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21일 현재 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회사)은 92개다. 올해 들어 12곳이 신규 등록했고 4곳이 취소됐다. 선거 등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공표하는 회사가 그 대상이다. 등록제도가 시행된 2017년(60개)에 비해 5년 만에 53%나 늘었다.
정보화 기술과 통계학의 발달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모든 응답자는 복잡한 정치 또는 정책 현안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확실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응답자는 진심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가 ‘밴드왜건(편승) 효과’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대세를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 현상이다. 현실 정치에서 여론조사의 폐해는 여기서 발생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특히 무게추 역할을 하는 중도·무당층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여론조사 자체가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각 정당 또는 정파는 주장하고 싶은 이슈에 대해 계속 여론조사를 돌리고, 일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내용을 확산시킨다. 여심위가 있지만 각 정당 및 후보 지지율이 아닌 정책 이슈에 대한 설문과 공표의 경우엔 감독 및 심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양곡관리법 같은 첨예한 갈등이 뒤따르는 이슈에 대해서 대놓고 본인이 속한 진영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선택적으로 발표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국가적 위기와 연결될 수 있다. 20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사임으로 영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근본적인 이유가 브렉시트(Brexit)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여론조사는 다수의 영국민이 유럽연합(EU) 잔류를 원한다는 전망이 많았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역시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캐머런 총리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파악하고, 이를 국정의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첨예한 이슈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고, SNS상에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학자, 전문가, 정치인들은 국내의 여론조사와 공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론조사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등 새로운 해법을 도출할 때가 됐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