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이란의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을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히잡 의무화 반대 시위에 등장한 22세 쿠르드계 이란인 마사 아미니 사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간 지 3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그의 사건을 계기로 이란 전역에서 반(反)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앞으로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신체를 가리는 모든 베일을 금지한다. 모든 여성은 히잡을 벗어라!”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싶으신 분이 많으실 겁니다. 이슬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히잡을 두른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96년 전, 그것도 이란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1936년 1월 8일 이란 수도 테헤란 테헤란교대 졸업식에 모인 사람들은 왕비 타지 올 모루크의 등장에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날 졸업장을 수여하기 위해 온 왕비는 그 어떤 ‘베일’도 두르지 않았습니다. 함께 온 두 공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란 역사상 처음으로 왕비가 대중 앞에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1936년 1월 8일 히잡을 벗은 채 궁궐 밖을 나서는 타지 올 모루크 왕비(맨 앞)와 두 공주(가운데). 이날 레자 칸 국왕(맨 뒤)은 공식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한 팔라비 왕조 초대 샤(Shah, 국왕) 레자 칸은 이날 공식적으로 ‘카슈프에 히잡(Kashf-e hijab, 페르시아어로 베일 벗기)‘ 법령을 선포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 히잡뿐 아니라 전통적인 이슬람 복장 착용은 일체 금지됐고 시민들은 서양식 의복을 입도록 강요 받았습니다. 경찰은 일제히 히잡 단속에 나섰습니다.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이 적발되면 히잡이 갈기갈기 찢기는 일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여성 사회 진출을 목표로 했던 이 법안은 역설적으로 히잡 벗기를 두려워한 수많은 여성을 집안에 가뒀습니다.
레자 칸 왕의 강력한 ‘히잡 벗기’ 정책은 1941년 아들 무함마드 레자 팔레비가 그를 쫓아내며 일단락됐습니다. 그전까지 단순한 전통 의상이던 히잡은 이후 현재까지 종교와 세속, 근대와 전통의 대립이라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여인이 차량 보닛에 기대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발간된 이란 가수 누샤파린(Nooshafarin) 화보. 혁명 이후 그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참가하는 이란 여성들. 팔라비 왕조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히잡을 두르고 있다.
‘히잡을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에서 차용한 문구처럼 당시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택하든 이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됐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자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루홀라 호메이니는 1979년 3월 7일 ‘직장 내 히잡 착용 의무화’ 법안을 발표합니다. 다음날인 8일(이날은 ‘국제 여성의 날’입니다) 테헤란 거리에는 10만 명이 넘는 여성이 쏟아져 나옵니다. 다음은 테헤란에서 발생한 이 히잡 의무화 반대 시위를 보도한 1979년 3월 10일자 미국 뉴욕타임스 기사 일부입니다.
1979년 3월 12일 호메이니 정권의 ‘히잡 의무화’ 법안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여성들. 대부분 히잡을 벗었다. AP 뉴시스
여성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호메이니 정권은 1983년 4월 비(非)무슬림과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여성의 히잡 착용을 강제적으로 의무화합니다. 당시 한창이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은 ‘질서 유지’ 명목의 강압적 국내 정책을 허용합니다. 이란 여성들의 지난한 반(反)히잡 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투쟁이 이슬람 종교 자체에 대한 저항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히잡을 강요하는 정권과 체제에 대한 저항입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히잡은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정권의 이념적 정체성”이라며 “이란 여성들이 반대하는 것은 히잡 그 자체가 아니라 히잡을 강요하는 공권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17년 12월 이란 테헤란 ‘혁명 거리’에서 흰색 히잡을 깃발처럼 들고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는 비다 모바헤드. 트위터 캡처.
2017년에는 ‘흰색 수요일(White Wednesday)’ 운동이 등장합니다. 언론인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마시 알리네자드가 주도한 이 히잡 의무화 반대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매주 수요일 흰색 히잡을 착용하는 것으로 정권에 저항합니다. 특히 그해 12월 테헤란 ‘혁명(Enghelab)거리’에서 흰색 히잡을 깃발처럼 묶어 들고 평화 시위를 벌인 여성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됩니다. 이란에 ‘혁명 거리의 소녀들(the Girls of Revolution Street)’이 등장한 계기입니다. 이들 중에는 스스로 히잡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 히잡을 쓴 것이다. 히잡은 강제돼서는 안 된다.”
흰색 히잡을 들고 평화 시위를 벌이는 ‘혁명 거리 소녀들’ 일원.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 페이스북 캡처
현재 지구에서 히잡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뿐입니다. 오히려 ‘세속 국가’ 정체성을 국제사회에 드러내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니캅(눈을 빼고 전신을 가리는 복장)이나 부르카(눈 포함 온몸을 가리는 가리개)를 금지하는 이슬람 국가도 늘고 있습니다. 시리아는 2010년 종교적 극단주의 배격을 표방하며 니캅을 착용하면 교단에 설 수 없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만약 국가가 특정 복장을 강요할 수 없다면 특정 복장을 금지할 권리는 허용될 수 있을까요? 1932년 공화국 수립 이래 강력한 정교(政敎) 분리를 표방한 터키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공공장소 히잡 착용을 금지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터키는 2017년 마지막으로 여군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허용하며 사실상 히잡 금지를 철폐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찬성 여론과 ‘이슬람주의로의 회귀’라는 반대 여론이 여전히 팽팽합니다.
옷은 의식주 가운데 맨앞을 차지할 정도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여러 관점이 얽힌 복장의 자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일 터키 수도 이스탄불 거리에 마사 아마니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저항의 표시로 잘라 버린 머리카락이 모여 있다. 이스탄불=AP 뉴시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