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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출생 신고합니다[신아형의 코스모스]

입력 | 2022-10-23 08:00:00


블랙홀 일러스트. 위키피디아

 


모든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처음 바깥세상과 마주하죠. 최근 그 무엇보다 거세게 포효하며 본인의 탄생을 알린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지의 천체, 블랙홀입니다.
역사상 가장 밝은 감마선 폭발

9일 나사의 스위프트 X-선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감마선 폭발 ‘GRB221009A’의 잔광. 나사 




9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우주에서 아주 밝은 빛 한줄기를 관측했습니다. 빛의 정체는 지구에서 약 24억 광년(1광년은 빛이 1년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감마선 폭발(Gamma-ray Burst·GRB)’의 섬광이었죠.

사실 감마선 폭발은 우주에서 흔하게 발생합니다. 나사가 2015년 한 해 관측한 감마선 폭발은 900건이 넘습니다. 그리고 이 감마선 폭발은 우리 태양이 약 100억 년의 일생 동안 방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단 1초 만에 방출합니다. 게다가 감마선 폭발의 빛은 사방으로 흩어져 희미해지는 빛이 아닌, 레이저 광과 같이 한 초점으로 모이는 빛이기 때문에 더 멀리 닿을 수 있고, 그 파괴력도 어마어마합니다.

14일 칠레 제미니관측소에서 촬영한 GRB221009A 빛. 미국 국립 광학·적외선 천문학연구실(NOIRLab) 




‘GRB221009A’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번 감마선 폭발의 섬광은 이전에 관측된 것들보다 훨씬 밝아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밝다’는 뜻의 ‘BOAT(Brightest Of All Time)‘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빛의 에너지가 무려 18TeV(테라전자볼트·10의 12제곱 전자볼트)로, 지구 대기 전리층의 장파 라디오 통신 신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죠. 브랜던 오코너 미 메릴랜드·조지워싱턴대 천체물리학 교수는 “이 정도로 밝으면서 우리(지구)와 가까이서 관측된 감마선 폭발은 백 년, 아마도 천 년에 한 번 일어날 만한 일”이라며 감탄했습니다.

감마선 폭발 ‘GRB221009A’가 빛을 방출하고 있는 모습. 나사






중력에 패배한 별의 최후 
그렇다면 감마선 폭발은 왜 일어나는 걸까요? 별의 죽음과 맞바꾼 블랙홀의 탄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별의 질량별 진화 과정. 유튜브 캡처





별은 질량에 따라 다소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태양의 질량을 기준으로 태양 질량의 8배보다 가벼운 별과, 태양 질량 8배보다 무거운 별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생을 마감하며 블랙홀로 변하는 태양 질량 8배 이상의 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중력과 핵융합 힘의 평형 일러스트. 별을 수축시키려는 중력의 힘(검은색 화살표)과 그에 맞서는 핵융합에서 발생하는 힘(노란색 화살표). Science at Your Doorstep 홈페이지 캡처








별의 운명은 ‘힘의 평형(equilibrium)‘에 달려 있습니다. 별을 수축시키려는 ‘중력’과 중력을 버티는 힘과의 평형이 유지되는 한 별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죠. 중력에 맞서는 힘은 별을 구성하는 물질인 수소의 핵융합(nuclear fusion)에서 비롯됩니다.

핵융합. 국제원자력기구(IAEA)





지난달 중성자와 우라늄-235 원자가 충돌해 더 작은 입자들로 쪼개지는 ‘핵분열’에 대해 살펴봤었죠(9월 25일자 ‘작은 것들의 큰 이야기-핵연료 우라늄’편 참고). 이번에는 그 반대입니다. 별 중심부에서는 수소 원자들이 합쳐져 더 무거운 원자인 헬륨이 되고, 또 헬륨 원자들끼리 부딪쳐 더더욱 무거운 탄소, 산소, 규소, 심지어 철로 변하는 연쇄 핵융합 반응이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손실된 질량이 저희 단골 공식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질량과 에너지 등가 공식(E=mc^2)’에 따라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거울수록 버텨내야 할 중력의 힘도 당연히 커지겠죠? 때문에 무거운 별은 가벼운 별보다 훨씬 더 빨리 연료를 소진해버립니다. 즉, 가벼운 별보다 더 빠르게 핵융합을 일으켜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아무리 열심히 핵융합을 한다 해도 별이 쓸 수 있는 연료는 한정적입니다. 결국 중력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죠. 핵융합 연료가 고갈되어 가는 동안 별 중심핵은 중력에 의해 계속 쪼그라들고 내부는 더 활활 타오르면서 중심핵 주변 껍질과 표면은 부풀어 오릅니다. 수소로 가득했던 별의 중심핵은 이제 철 등 무거운 원자로 대체됩니다. 이제 이 별은 임종을 맞을 때가 됐다는 뜻입니다.
초신성과 중성자별 합병

초신성 일러스트. 영국 옥스퍼드대





펑! 별의 죽음과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맹렬한 폭발이 일어납니다. 바로 ‘초신성(supernova)‘입니다. 팽창한 별 표면의 물질들은 폭발과 함께 날아가 버리고 중심핵만 남게 됩니다. 초신성 폭발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니켈, 아연, 은, 금 등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초신성의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우주에 금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난 배경을 연구하죠. 


이때 남겨진 중심핵은 두 가지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첫째, 만약 중심핵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약 1.4배와 3배 사이일 경우 중력의 힘으로 원자 내 양성자와 전자가 뭉쳐지면서 중성자로만 이뤄진 중성자별이 탄생합니다. 둘째, 중심핵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3배 이상이면 중력으로 완전히 붕괴되면서 부피는 ‘0’이지만 밀도는 무한히 큰 ‘블랙홀’이 탄생합니다.여기서 잠깐
그 무엇도, 심지어 빛조차도 한 번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은 그야말로 공포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중성자별 역시 그 밀도가 엄청나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티스푼 한 숟갈의 중성자별 무게는 무려 약 40억 t에 달한답니다. 에베레스트산을 한 개의 커피잔 안에 넣어놓은 정도의 밀도죠. 그런데 중성자별의 지름은 약 20km로, 도시 하나 크기입니다.

가까이 있는 두 중성자별. 나사





중성자별 또한 블랙홀로 변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 있는 중성자별 두 개가 서서히 원을 그리며 돌다가 서로 닿을 만큼 가까워지면 회전 속도가 미친 듯이 빨라지죠. 그러다 이 둘은 결국 충돌해 하나로 합쳐지고 마지막에는 블랙홀로 붕괴되고 맙니다. 두 중성자별이 함께 한 궤도를 그리며 회전할 때는 중력파를 발산하는데, 2017년 8월 나사는 처음으로 중성자별 두개가 합쳐지면서 발생한 중력파를 직접 감지하기도 했습니다. 




이원 중성자별 충돌, 병합. 나사






자, 이제 앞서 소개해드렸던 감마선 폭발에 대해 다시 얘기해볼까요. 먼 길을 돌아 왔네요. 감마선 폭발은 초신성이 일어날 때, 또는 이원 중성자별이 합쳐질 때 일어납니다. 블랙홀 탄생과 동시에 블랙홀 주변에는 자화된 물질 가스가 회전을 하게 되는데, 이때 형성된 강력한 자기장의 압력으로 인해 물질과 에너지가 제트 형태로 빛의 속도에 가까운 매우 빠른 속도로 분출됩니다. 이 현상이 바로 감마선 폭발인 거죠. 중성자별 병합으로 인한 감마선 폭발은 1초 이하로 아주 짧게 일어나는 반면 초신성으로 인한 감마선 폭발은 약 1분 동안 비교적 더 길게 나타납니다.

감마선 폭발. 나사





블랙홀 연구로 유명한 영국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1942~2018)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차용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주사위를 던진다”며 블랙홀의 물질 분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위키피디아





9일 관측된 감마선 폭발 GRB221009A은 수백 초간 지속됐으며 태양의 질량보다 30배 이상 무거운 별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개월 간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더 정확한 감마선 폭발 발생 배경을 파악할 예정입니다. 여태껏 이렇게 밝고 선명한 감마선 폭발은 본 적이 없는 만큼 과학계는 흥분 상태입니다. 여전히 미스터리로 가득한 블랙홀의 탄생을 가장 또렷하게 목격한 것이니까요. 이번 관측이 블랙홀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또 하나의 단서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