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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천무’ 도입 발표, K-방산 동유럽 평정 쐐기타!

입력 | 2022-10-23 11:47:00

16초 만에 초탄 발사 가능… 美 하이마스 압도하는 명품 다연장로켓




한화디펜스의 K239 천무 다연장로켓 시스템. [뉴시스]

“포병은 전쟁의 신(神)이다.”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했다는 이 말은 20세기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군사사상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1년 냉전체제 붕괴와 걸프전쟁을 계기로 스탈린의 이 ‘격언’은 점차 사장(死藏)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이 맞대결할 일이 없어지자 대규모 포병이 불을 뿜을 전면전 가능성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이 걸프전에서 항공기로 외과 수술과도 같은 정밀한 타격을 선보이자 포병은 구시대 산물이 됐다. 자연스레 포병 전력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게 세계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미 육군은 냉전 시기 운용하던 수천 문의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시스템을 수백 문 규모로 줄였다.

냉전 후 포병 전력 대폭 줄인 나토 회원국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도 각각 수백 문에 달하던 자주포를 두 자릿수까지 줄였다. 한때 유럽 최대 포병 보유국이던 독일은 이제 자주포 94문과 다연장로켓 38문만 갖고 있다. 한국의 군단 예하 포병여단 정도 규모다. 프랑스 역시 자주포와 견인포를 모두 합쳐 100문이 되지 않는 규모로 포병을 줄였다. 이처럼 포병 전력을 대폭 감축한 것은 다른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국 M142 하이마스. [사진 제공·록히드마틴]

탈냉전 시기 세계 각국은 포병 규모를 줄이는 대신, 포격 정밀도를 높이고 플랫폼의 기동성을 강화했다. 대규모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아졌으니 강력한 화력보다 정밀하게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동시에 수송기, 헬기 등으로 빠르게 작전 지역까지 이동할 수 있는 경량 포병 시스템이 각광받았다. 가령 미군은 무게가 30t인 M109 자주포보다 4t 안팎에 불과해 헬기로 수송 가능한 M777 견인포를 선호했다. 같은 맥락에서 무거운 궤도차량에 실린 12연장 로켓포 시스템 M270 MLRS보다 C-130 수송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16t 무게의 M142 하이마스(HIMARS)가 주목받았다. 유럽 나라들도 비싸고 무거운 중형(重型) 화포보다 가볍고 저렴한 차륜형 자주포 도입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정치인과 전략가 사이에 자리 잡았던 통념을 깼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황은 세계 각국, 심지어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조차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확대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포병이 전장을 지배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개전 초 대규모 포병을 동원해 하루 7만 발 이상 포탄을 쏟아부으며 우크라이나를 밀어붙였다. 이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정밀 포병으로 러시아 포병을 차례로 무력화하며 전황을 역전시켰다.

우크라이나 정밀 포병의 핵심은 M142 하이마스다. 이름 그대로 고(高)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 즉 기동성이 매우 우수한 로켓 무기다. 하이마스는 미 육군의 작명처럼 기동성을 최우선시해 개발됐다. 이를 위해 이동식 포병 무기에 설치되는 안정화 장치(outrigger)를 과감히 생략했다. 주행 중 사격 명령이 떨어지면 정차 후 30초 내로 로켓탄을 연사하고 다시 30초 안에 현장을 이탈할 수 있다. 발사기에 아예 전용 크레인을 달아 탄약만 준비되면 재장전에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고작 10여 문의 하이마스를 쉴 새 없이 움직여 러시아군의 전방 추진 탄약고와 지휘소를 잇달아 파괴했다. 이 같은 작전이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러시아군 포병 전력은 7월부터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군에 포병이 제압당한 러시아군은 9월부터 하루 평균 300~500명 전사자와 그 3~4배에 달하는 부상자를 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군 사상자 수는 러시아군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여름부터 병력 피해가 크게 줄어든 우크라이나는 가을 정기 징집을 취소할 정도로 여유만만한 상황이다.


재블린 이은 하이마스 열풍


우크라이나인은 하이마스를 ‘세인트(saint·聖) 하이마스’로 상찬하거나, 아예 러시아군을 격퇴하는 데 특화된 무기라는 뜻에서 ‘고기동 대러시아 시스템(High Mobility Anti Russian System)’이라 부르기도 한다. 개전 초 활약한 ‘세인트 재블린’ 미사일에 주목한 여러 나라의 주문으로 제조업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이마스를 두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 쇄도하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다. 당장 미 육군과 해병대가 추가 발주에 나섰고, 유럽 각국도 주문을 넣고 있다. 나토 최일선 국가 폴란드는 무려 500문을 사겠다고 나섰다.

폴란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20문의 하이마스를 구매하겠다는 뜻을 미국 측에 전달했고, 판매 승인까지 받았다. 당시 판매 승인된 20문은 지난해 구매 계약이 체결돼 이르면 내년부터 일부 물량이 폴란드에 인도될 예정이다. 그런데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지상군 규모를 2배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새로 창설하는 모든 사단과 독립포병여단, 독립포병대대에 총 80개의 하이마스 포대를 편성하겠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이를 위해 500문의 하이마스를 추가로 사겠다는 구매의향서를 미국 정부 측에 제출했지만 미국은 4개월째 ‘검토 중’이다. 폴란드가 제시한 조건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폴란드와 불편한 관계인 독일의 반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내건 구매 조건은 무엇일까. 하이마스 원형(原形)은 미국 ‘오시코시’의 FMTV 중형전술트럭에 6연장 227㎜ 로켓 발사기를 얹은 것이다. 폴란드는 그 대신 자국 기업 ‘젤츠’가 생산한 중형전술트럭 차체에 하이마스의 로켓 발사기를 얹고, 사격통제장치는 자국산 토파즈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방식의 현지 기술도입 생산을 요구하고 있다. 발사기보다 거래 규모가 큰 탄약도 폴란드 현지에서 기술도입 생산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미국으로선 가뜩이나 독일이 폴란드의 군비 증강을 불편해하는데, 부품 값과 로열티 정도만 챙길 수 있는 계약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미국이 하이마스 대량 수출 승인을 계속 미루자 폴란드는 곧바로 ‘플랜 B’를 발표했다. 한국으로부터 K239 천무 다연장로켓 시스템을 300문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기동성 키우느라 화력 약한 하이마스

폴란드는 초기 일부 물량을 제외한 천무 대부분을 기술도입 형태로 생산할 예정이다. 차량은 젤츠의 8×8 중형전술트럭으로 하고, 사격통제시스템도 폴란드의 토파즈 시스템을 천무에 맞게끔 개량해 적용한다. 제식명은 ‘WR-300 호마르(Homar)’로 알려졌다. 폴란드 정부는 일단 천무 구매와는 별개로 미국산 하이마스 500문 도입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천무 도입이 본격화되면 하이마스 도입은 백지화되거나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폴란드 입장에선 하이마스보다 천무가 전장 환경에 더 부합하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이마스는 기동성에 중점을 두고 개발된 무기다. 수송기 탑재를 고려해 중량과 발사기 수를 제한하다 보니 기동성은 뛰어나지만 화력 지속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폴란드는 미국과 달리 하이마스를 수송기에 실어 장거리 원정을 보낼 일이 없다. 국토 대부분이 평야인 폴란드는 예부터 유럽 교통 요충지로서 도로가 발달했다. 따라서 같은 차륜형 다연장로켓 시스템이라면 화력이 우수한 쪽이 더 매력적이다.

국산 전술지대지 유도무기(KTSSM) 발사 모습. [사진 제공·국방과학연구소]

천무는 하이마스와 달리 포탄을 발사할 때 차체 안정성을 위해 아웃트리거를 채택했다. 동시에 자동화 사격통제시스템도 갖춰 발사 명령 후 16초면 사격 준비를 마치고 초탄을 날릴 수 있다. 도로를 달리다 1분 안팎의 짧은 시간 만에 정차→사격제원 산출→방열→사격을 마치고 현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장형 크레인을 이용해 160초 안에 재장전도 가능하다. 하이마스가 운용하는 227㎜ 로켓은 물론, 사용자 요구에 따라 다양한 구경의 탄종을 선택해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천무는 130·227·230·239㎜ 등 로켓탄 4종과 KTSSM-II 등을 운용할 수 있다. 130㎜ 로켓을 탑재할 경우 사거리 23㎞ 또는 36㎞에 달하는 로켓을 40발이나 연사할 수 있다. 227·230㎜ 로켓은 미국 M26 로켓을 개량한 이중목적고폭탄(DPICM) 탄두를 적용한 것이다. 천무엔 12발 탑재가 가능하다. 이 로켓의 표준 사거리는 45㎞로, 로켓 1발이 축구장 3개 면적에 파편 비를 쏟아부어 강력한 광역 제압 효과를 발휘한다. 가장 최신형인 239㎜ 유도 로켓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관성항법시스템(INS) 유도장치를 장착해 초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사거리가 80㎞에 달하고 DPICM과 콘크리트 관통탄두도 탑재할 수 있다.
동유럽 국가들 천무 도입 가능성 높아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은 10월 14일(현지 시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한화디펜스의 다연장로켓 천무 약 300문을 도입하기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GETTYIMAGES]

현재 개발 중인 천무용 신형탄은 사거리가 200㎞까지 연장돼 어지간한 전술 탄도미사일급의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천무의 가장 강력한 타격 수단이자 폴란드가 도입할 KTSSM-II는 사거리 290㎞급 전술 지대지탄도미사일이다. 사거리 300㎞ 이상 탄도미사일 수출을 금지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을 의식해 능력을 제한한 것이다. 명중 오차는 수 미터에 불과하고 500㎏의 관통형 열압력 탄두와 고폭파편탄두를 장착하는 버전이 모두 개발됐다. 적 지휘소나 탄약고는 물론, 밀집해 있는 병력을 상대로 대단히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갖췄음에도 천무 가격은 1문에 30억 원 수준이다. 문당 350만 달러(약 50억 원)가 넘는 하이마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천무는 성능·가격·범용성 면에서 하이마스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췄다. 미국처럼 C-130급 중형 수송기를 이용해 장거리 원정 작전을 펴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면 최적의 선택지다. 당장 한국군이 천무 367문을 도입 중이고 아랍에미리트(UAE)도 수십 문을 운용하고 있다. 폴란드가 대량 도입을 천명하면서 천무는 이제 하이마스 못지않은 ‘규모 경제’를 확보할 전망이다. 획득은 물론 운용, 유지 측면에서도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단 폴란드 현지에서 기술도입 생산을 시작하면 옛 소련의 다연장로켓 무기를 운용하는 동유럽 국가들도 천무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이미 K9 자주포 돌풍이 불고 있는 유럽 포병무기 시장에 천무가 쐐기타를 날릴지 기대해본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1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