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과 제품시장에서 中 사라지는 ‘제로 차이나’ 가능성 상존하는 시대 한국, 지금처럼 위기의식 없으면 제2 ‘요소수’, ‘인플레법’ 줄 이을 것
천광암 논설실장
일본 와세다대 도도 야스유키 교수는 중국 등 해외발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일본 경제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게 될지를 연구해 왔다. 세계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100만 개 일본 기업의 공급망 데이터를 분석했다고 한다. 대중(對中) 수입 80%가 두 달간 끊겼을 때 자동차, 전자, 식품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53조 엔에 이르는 생산 소실(消失)이 발생한다는 게 도도 교수의 결론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이런 내용을 ‘제로 차이나가 되면…’이라는 제목 아래 소개했다. 53조 엔은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정해서 고민하는 일본이 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동인(動因)은 과거 일본이 실제로 겪은 쓰라린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은 2010년 9월 중국-일본 간 분쟁 수역에서 자국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국 어선을 나포해 선장을 기소하려는 직전 단계까지 갔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 물량을 삭감하는 보복 조치를 단행하자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20여 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제로 차이나’는 일본만의 리스크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 봉쇄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로 반도체를 활용하고 있다. 제조장비와 기술 측면에서는 미국에 ‘을(乙)’이고, 제품 판매 면에서는 중국에 ‘을’인 한국으로선 언제 어느 칼날에 ‘제로 차이나’와 같은 위기를 맞을지 모른다.
대만 문제도 심각한 변수다. 마이클 길데이 미국 해군참모총장은 19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2027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올해나 내년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결행한다면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했던 것 이상의 제재를 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한국도 당연히 제재 대열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중국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리는 없다. 올 3월 상하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위협을 받자 시 전체를 두 달 넘게 봉쇄했던 중국이다. 훨씬 더 민감한 영토 문제에 관해서는 훨씬 더 극단적인 조치가 나올 것이다.
아직 한국에는 도도 교수가 한 것과 같은 심층 연구가 없지만, ‘제로 차이나’의 충격이 일본보다 작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전체 수출입에서 대중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5% 선이다. 하지만 일본은 내수 중심 경제이고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다. 해외발 충격에 대한 저항 체력이 전혀 다르다. 전체 GDP에서 대중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은 6.5% 수준인 데 비해 한국은 16.5% 수준이다. 단순계산으로는 일본보다 두 배 이상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상시화한 공급망 위기의 근원에 해당하는 미중 디커플링은 이미 몇 년째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위기의식이 없다. 신구 정권이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 ‘중국산 요소수 사태’ 당시 보여줬던 안일한 뒷북 대처 행태가 최근 미국의 ‘인플레감축법’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정부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금지 조치 이후 일본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며 부산을 떨었지만, 일본 의존이 중국 의존으로 바뀌었을 뿐 제대로 된 성과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10차례에 걸쳐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지만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피상적인 논의와 백화점식 해법의 나열이 공감을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27일로 예정된 11번째 비상경제회의는 TV 카메라를 앞에 두고 90분간 생방송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행여라도 빈약한 경제성과를 포장하거나, 공허한 말잔치로 현실을 호도하는 자리가 돼선 안 된다. 이번만큼은 ‘제로 차이나’ 등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본질적인 위기에 대한 진단과 제대로 된 해법을 국민 앞에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