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밝으면 그늘이 짙다. 요즘 ‘빙하기’가 도래한 부동산 시장이 딱 그렇다. 최근 3, 4년간 전례 없이 폭등했던 아파트 가격이 뚝뚝 떨어지더니 급매, 급급매에 이어 반값 아파트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 염리삼성래미안 전용면적 84m²가 8억 원에 거래됐는데 1년 전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이 단지 커뮤니티가 발칵 뒤집힐 만하다.
▷강남 불패 신화도 깨졌다. 8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자이개포 전용면적 84m²는 8개월 전보다 9억 원 떨어진 15억 원에 팔렸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m²는 지난달 13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한 달 만에 무려 8억 원이 빠졌다. 이들 거래 중에는 직거래가 섞여 있어 집값 폭락의 전조인지, 세금을 아끼려는 증여 거래인지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집주인들은 반값 아파트를 막기 위해 똘똘 뭉쳤다. 반값 아파트 거래를 성사시킨 공인중개업소를 공개하고 보이콧하거나 매도인의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압박한다. 하지만 집값 하락의 추세를 거스르긴 역부족이다.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전용면적 84m²)를 5억 원가량 낮춰 판 아파트 매도인은 유튜브에 직접 출연해 “매달 대출 이자 내줄 것도 아니면서 사유재산에 대해 왜 팔았느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싸게 팔고 싶어 싸게 팔았겠느냐는 호소다.
▷금리에 따라 집값이 움직인다 하더라도 아파트 가격의 변동성이 지나친 것은 문제다. 실수요보다 갭 투자 같은 투자 수요가 집값을 올려놓고 집값이 떨어지자 투매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팬데믹 동안 집값 버블현상이 심각했던 나라에 속한다. 거품이 사그라지는 과정에서 시장의 고통이 커질 것이다. 그래도 집값은 차츰 정상화돼야 한다. 청년들은 “내 집 마련에 따라 인생의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자조한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는 풀기를 포기하게 되듯이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