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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동시 핵위협과 너무 다른 美 대응[특파원칼럼/문병기]

입력 | 2022-10-24 03:00:00

선제 전술핵 공격도 ‘관심 끌기’ 치부
핵우산 신뢰 높일 대책 나와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 위협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모방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선 북한이 지난달 발표한 핵무력정책 법령은 러시아의 ‘핵 독트린’의 4대 핵무기 사용 조건이 그대로 담겼다.

다만 북한의 핵 독트린에는 국가지도부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됐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특히 북한의 핵 독트린에는 한반도 유사시 전쟁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서도 핵 선제공격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담겨 러시아보다 핵무기 사용 문턱이 낮다.

지도자가 직접 핵 위협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김 위원장이 훨씬 노골적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을 강제 병합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통해 방어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반면, 김 위원장은 전술핵 운용 부대를 현장지도하고 노골적으로 한국을 향한 전술핵 선제공격을 협박하고 있다. 적어도 핵 위협의 강도와 내용 면에선 북한의 위협을 러시아보다 낮춰 보기 어려운 셈이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핵 위협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은 천지차이다. 러시아의 핵 위협에 바이든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핵 아마겟돈의 위험에 직면했다”고 우려하며 앞장서서 경보를 울리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도자(김 위원장)의 관점에서 보면 무시당하기 싫다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핵 위협을 ‘관심 끌기’로 규정했다.

물론 세계 최대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와 북한의 핵전력 격차와 실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한반도의 상황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의 핵 위협에 대한 확연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 차이가 꼭 이 때문만일까.

워싱턴 싱크탱크 관계자는 “중국 대응에 사활을 건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의 현상 변경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사실상 ‘전략적 무시(strategic neglect)’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대만에 이어 한반도를 또 다른 전선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최대한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높아진 북핵 위협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응은 핵 억지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서 제기된 전술핵 재배치와 전략자산 상시 배치 요구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추가 대북 경제 제재와 한미·한미일 연합훈련을 내세우며 “미국의 확장 억지 약속은 철통같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미국과 중, 러 갈등 속에 유엔 신규 대북제재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북한이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요구한 5건의 경제제재는 이미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 북한 도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역시 전략폭격기를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까지 보내 북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2017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핵 위협에 국민적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다음 달 바이든 대통령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핵 억지력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