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희 작사가
“매화 시들고 나니/해당화 새빨갛게 물이 들었네/들장미 피고 나면 꽃 다 피는가 하였더니/찔레꽃 가닥가닥 담장을 넘어오네.’―왕기(王淇) ‘늦봄에(暮春遊小園)’ 중
시를 쓴 왕기(1019∼1085)는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다. 매화, 해당화, 들장미, 그리고 찔레꽃…. 봄꽃이 영영 지는가 하면 또 다른 꽃이 피는 풍경을 보며 자연의 섭리를 생각한 듯하다. 꽃들은 앞다퉈 한 번에 피지 않는다. 끈기 있게 자기 차례를 기다려 꽃을 피운다. 늦게 핀다고 추한 꽃은 없다. 오히려 천천히 피어날수록 생명력이 긴 경우도 있다. 인생이란 꽃도 그렇지 않을까? 아직 아무것도 모를 때 모두 다 피어버린 꽃보다, 바람도 맞고 햇살도 맞으며 천천히 열리는 꽃이 나는 좋다. 처음 작사를 시작한 건 스무 살 무렵이다. 우연한 기회에 내 글을 본 지인이 ‘가사 한번 써볼래?’ 해서 첫 가사 작업이 시작되었다. 장필순 언니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쓰며 주변의 관심을 조금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사가로 한참을 활동하다 뒤늦게 작곡과 노래도 보태 싱어송라이터로 발을 내디뎠다.
육아로 7년을 쉬고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갔고 밤늦게까지 녹음하고 공연하는 날이면 집에선 으레 큰소리가 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돌아보면 햇살을 머금고 비를 흡수하고 거름을 모으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음악을 하고 싶어도 맘껏 하지 못하던 그 시간들이 있어 ‘감사’를 배웠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가. 더구나 나의 꽃은 이 나이에도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듯하다. 내 꽃이 필 차례, 즉 나의 ‘꽃차례’는 이리도 천천히 오는 중이다. 아직도 설레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어쩌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가장 감사한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조동희 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