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강애심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에 출연하는 배우 강애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8살 때 노르웨이로 입양된 뒤 33년 만에 친부모를 찾겠다며 한국을 찾은 남성이 있었다. 4년 넘게 서울과 경남 진해를 오가며 친부모를 찾아 헤맸다. 사진 찍기가 취미였던 남자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 풍경 이모저모를 프레임에 담았다고 한다. 아무리 찾고 기다려도 친부모가 나타나지 않자 그는 이내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을 앓다 2018년 1월 고시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노르웨이 국적의 고(故) 채성욱 씨(당시 45세)의 사연에서 출발한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가 2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초연된다.
박상현 작·연출의 연극은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 ‘해방촌에서’ ‘노량진-흔적’ ‘오슬로에서 온 남자’ ‘의정부 부대찌개’ 등 총 5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된다. 각각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옴니버스 식 연작은 아니다. 해외 입양아, 다문화가족, 성소수자 등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 변두리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우 강애심(59)은 ‘오슬로에서 온 남자’와 ‘노량진-흔적’에 다(多)역으로 출연한다. ‘오슬로…’에선 친부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가 고독사한 욘 크리스텐센의 어머니, ‘노량진…’에선 두 동생과 살아가는 큰 누나를 맡았다.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한민국엔 정말 무수한 역사들이 있잖아요. 동족상잔의 비극 그 이후에 나라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벌어졌던 많은 사건과 인물이 작품에 등장해요. 연극을 통해 역사 속 풍경들을 간접체험을 한다고 할까.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정서,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이를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 우연히 자식을 잃어버리고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엄마, 생활고에 시달려서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 입양아의 엄마였을지 모르는 여러 군상의 여인을 연기합니다. 욘의 엄마가 계신다면 이런 마음을 품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요.”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의 배우 강애심.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또 다른 이야기 ‘노량진…’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둔 땅 문제로 노량진에 다시 모이는 삼남매의 맏언니가 된다. 미군부대와 해방촌이 있었던 곳을 배경으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면서, 60~70년대 전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 펼쳐진다.
“완전히 서로 다른 이야기 같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나시면 이게 모두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이야기란 걸 알게 되실거예요. 저도 처음에 극본을 받았을 때 ‘이게 무슨 내용이야’ 싶었거든요. 연습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한 코에 꿰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극 ‘연변엄마’(2011년)에서 인연을 맺은 박상현 연출과는 두 번째 작품이다. 그때도 강애심은 엄마를 연기했다. ‘연변엄마’는 중국 연변에 살던 여성이 한국에 와서 딸을 찾는 로드무비. 그가 연기했던 ‘조선족 여성’ 역시 ‘경계에 선 사람’이었다. 그는 “온갖 고생을 넘어 겨우 찾은 딸이 지독한 불행을 겪는 모습을 보게 되는 엄마를 연기했다”며 “아주 많이 슬펐고 처참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엄마, 할머니, 동물 연기는 참 많이 했는데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라서 그런가 아직 멜로 연기를 거의 못 해봤습니다. 춘향전에서 방자와 썸 타는 향단이 정도? 나이든 커플의 로맨스 연기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11월 13일까지, 전석 3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