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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유곡의 판타지, ‘도원’을 그리다[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입력 | 2022-10-25 03:00:00

중국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래 동아시아 작가들은 이상향인 ‘도원’을 저마다의 상상력을 덧입혀 화폭에 담아냈다. 이상범이 1922년에 그린 ‘무릉도원’. 10폭 병풍 크기의 대작으로 그림 상단에는 왕유의 시를 적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과연 이상향(理想鄕)은 있을까.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상향을 그리워했다. 과연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사전식으로 설명하면, 유토피아(Utopia)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다. 한마디로 세상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럴까. 없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더 그리워한다. 나는 서양에서 말하는 천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성경을 읽어보았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이상향, 즉 도원(桃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중국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이래 이상향은 문학이나 미술 작품에 숱하게 묘사되어 왔다.

왕유(王維)의 ‘도원행(桃源行)’은 도원, 즉 이상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어부가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 그윽한 곳으로 들어가니 복숭아꽃 만발한 별천지가 있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속세의 일을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도원을 나온 어부는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면 맑은 시내 몇 번이나 지나서 구름 같은 숲에 이르랴. 봄 오면 복숭아꽃의 물을 두루 찾아 나서도 신선 사는 도원을 어느 곳에서 찾을까 구별을 못할세라.” 이러한 한탄은 왕유만의 것도 아니다. 다시 찾을 수 없는 복숭아꽃 만발한 이상향, 그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

이상범은 청년 시절 10폭 병풍의 크기에 야심작 ‘무릉도원’(1922년)을 그렸다. 청록산수 형식으로 나름의 도원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림 상단에는 왕유의 시를 적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되었다. 그래서 대표작으로 꾸민 ‘한국미술명작’ 전시에 출품하여 관객의 주목을 끌었다.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무릉도원 그림이 또 있다. 바로 이상범의 스승인 안중식의 ‘도원도(桃源圖)’(1916년)이다. 현재 이 그림은 국립광주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진열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가운데 명품으로 꾸민 전시이다. 사제지간으로 같은 소재인 무릉도원을 그렸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기야 조선왕조 초기에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은 서화 수집가로 유명했다. 그는 어느 날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거닐었고, 꿈 이야기를 화원 안견에게 말했다. 안견은 3일 만에 대작 ‘무릉도원’을 그렸다. 남의 꿈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꿈 이야기처럼 실감나게 그렸다. 불후의 명작.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상향을 지키지 못했다. 현재 안견 작품은 이국에서 묶여 있다. 나는 가끔 안평대군의 별장이었던 인왕산 자하문 자락의 무계정사 동네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그 많던 안평대군의 미술 컬렉션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왕조 말기의 화단을 지킨 거장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무릉도원을 그린 역작 ‘도원문진(桃源問津)’(1913년)이나 ‘도원행주(桃源行舟)’(1915년) 같은 작품을 남겼다. 청록산수 계열의 이들 작품은 도원을 찾아가는 어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원은 어디에 있을까. 도원을 찾아가는 어부의 모습. 과연 현대인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안중식은 말년에 도원을 자주 그렸다. 나라를 잃고 일제 치하가 되어 더 그랬을까. 현실의 세속을 벗어나 이상향을 그리워한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원으로 가는 입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상범의 스승인 안중식이 1916년에 그린 ‘도원도’. 기다란 화폭에 깊은 계곡과 낙하하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안중식의 ‘도원도’는 상하로 기다란 화면에 도원을 표현했다. 그야말로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계곡은 깊고도 깊다. 저 멀리 원경(遠景)은 바위산으로 용솟음처럼 치솟아 육중하다. 중간 부분의 산자락에 사찰과 같은 건축물이 있고, 바위 사이에 숲을 이루고 있다. 하단에는 물가의 정자에 앉아 있는 선비의 모습이 보인다. 물을 바라보고 있는 은사(隱士), 그는 세속의 번다한 일을 잊고 자연과 벗 삼아 소일하고 있다. 하기야 자연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그래서 산수화 속에 표현되는 인간은 작고도 작다. 자연의 순리는 중요하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두 가지로 나누어 각각 산과 수로 집약했다. 그래서 산수화에서 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의 교훈. 물은 자신의 이름이나 출신을 자랑하지 않고 아래로만 흘러 결국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경지는 물과 같다.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모습. 산수화는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도 인기를 끌었다. 바로 수기(修己), 나를 닦는 것처럼 더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안중식 그림 위에 적힌 시는 이렇다. “짙푸르게 그늘진 나무에 돌길이 미끄럽고 신선 집 정자에는 때마침 노을이 있네. 지난밤 계곡에는 한바탕 비가 내려 복숭아꽃 셀 수도 없이 지는구나.”


세상 살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이상향을 더 그리워한다. 그러나 어떻게 할까. 유토피아는 없다는데. 그렇다면 생각 바꾸기, 바로 이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그렇다면 지옥도 천국이다. 바로 현실 속의 이 자리가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면 뭐가 문제일까. 이상향이 어디에 있냐고? 바로 내 주머니 속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까.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