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취임 45일만에 사임한 것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즘 때문이며 노동자 계층과 자유시장 지지자들 사이에는 타협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미국 월스트리저널이 24일(현지시간) 칼럼에서 주장했다.
영국 보수당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당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기민해 200년 영국 민주주의 기간의 3분의 2 이상을 집권해왔다. 그러면서도 핵심가치를 줄곧 지켜옴으로써 서구 문명의 보존에 크게 기여했다. 로버트 필,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가렛 대처 등이 보수당의 역사를 대변한다.
따라서 최근 몇 달 동안의 영국 혼란은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2차 세계대전과 동서 냉전에서 승리한 정당이 잘못된 통치의 사례로 조롱 당하면서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영원한 회전문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한 달 전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감세정책으로 경제를 부양하겠다던 정부가 수백억 달러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을 준비하고 있다.
3개월 전 제레미 헌트가 총리 경선에 출마한 8명의 주자 중 꼴찌가 돼 출마를 포기했다. 그런 그가 트러스의 잘못된 재정 실험의 대가로부터 영국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을 전망이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있다. 3개월전 동료 보수당 의원들에게 버려져 총리에서 물러났던 그가 지난 주 다시 출마를 시도했다. 결국 리시 수낙이 신임총리가 됐지만 그는 회계전문가일 뿐 존슨의 카리스마도, 트러스의 무모함도 없는 인물이다. 영국은 큰 상처를 입은 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약간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포스트 브렉시트 심리와 포스트 팬데믹 심리가 결합해 벌어진 영국만의 병리현상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세력과 겹치는 대목도 있다.
보수주의만의 특별한 문제점도 있다. 영국과 미국의 문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 보수당은 국가적 자결권 강화라는 포퓰리즘 요구를 활용해 브렉시트에 성공했으나 이를 정착시키는데 실패했다. 감세, 정부 역할 축소, 이민 개방 등을 통해 “테임즈강의 싱가포르”가 되겠다는 비전이 있었지만 트러스의 실험으로 단명했다. 영국의 자주성을 높여 복지정책을 강화할 것을 노린 노동자 계층의 비전이었다. 시장과 충돌하면서 붕괴했고 브렉시트에 찬성한 보수당 당원들의 정서에 반해 무너졌다.
미국 정치에서도 가난한 노동자층에 의존하는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보수주의가 강력히 부상하고 있다. 미국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무역과 이민,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에 반대한다. 두가지 흐름을 결합하려던 영국의 실험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