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보수단체가 주최한 집회(왼쪽), 같은 시각 중구 태평로빌딩 앞에서 진보단체가 연 집회 현장 사진. 뉴시스
보수·진보 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동시에 열린 22일, 서울 종로와 용산구 일대에서 7만여 명이 모였다. 정반대의 구호를 외치는 수만 명의 집회 참가자 중 일부가 가벼운 몸싸움을 벌였지만, 우려했던 대규모 충돌은 없었다. 이날 집회 참가자 중 폭행 등 혐의로 입건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애초 가장 큰 충돌이 예상됐던 장소는 대통령실과 가까운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인근이었다. 진보 성향의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이달 초 숭례문 인근에서 집회를 연 뒤 삼각지 파출소까지 행진하겠다고 신고하자, 보수 단체 신자유연대는 촛불행동의 행진을 저지하기 위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맞불집회를 열겠다는 신고서를 냈다.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열린 촛불행동이 주최한 ‘윤석열 정부 규탄 집회’ 참가자들이 태평로에서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양 집회 주최 측 모두 각자 신고한 장소를 고수하며 집회 당일 오전까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경사는 집회 당일 22일 오전 삼각지역과 숭례문 일대를 오가며 양 집회 주최 측을 직접 만나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이 경사는 “양측 모두 ‘대통령실 앞’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삼각지역에서 반드시 집회하려는 생각이 컸다”며 “‘하지 말라’와 같은 부정 표현, 강한 표현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감시 또는 통제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말 한마디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22일 오후 8시경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이춘영 경사(35)가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 촛불 집회 현장에서 안내 업무를 하고 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안전사고는 피해야 한다는 이 경사의 설득에 주최 측이 공감했다. 촛불행동은 22일 오후 6시경 행진 종료 장소를 삼각지 파출소 앞에서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으로 바꿨다. 불과 행진 시작 약 1시간 전이었다.
두 단체는 이날 오후 약 700m 떨어진 곳에서 각자 집회를 마치고 오후 8시경 해산했다. 경찰은 해산하는 과정에서 집회 참가자 간 다툼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촛불행동 집회 참가자들은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신자유연대 집회 참가자들은 삼각지역으로 귀가하도록 했다.
보수·진보 단체들이 연말까지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추가로 열겠다고 예고하면서 여러 집회 주최와 경찰 간 중재를 담당하는 대화경찰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2018년 도입한 대화경찰이 집회 현장의 갈등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2020년 12월 경찰청이 공개한 ‘대화경찰 효과성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대화경찰을 현장에 투입하면 대화경찰이 없는 현장에 비해 위법 시위가 54.5%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은 대화경찰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 9월 공공안녕정보국 정보관리과 산하에 대화경찰계를 신설하기도 했다.
현재 용산서에는 대화경찰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통령실 이전에 맞춰 용산서의 집회 관리 업무가 늘면서 인력이 충원됐다. 과거 ‘집회 1번지’였던 종로서에서 대화경찰로 근무했던 이 경사도 이 가운데 한 명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인근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규탄 집회에서 이 경사가 유모차에 타고 있는 시위 참가자의 자녀를 보며 미소짓고 있다.
조응형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