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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대형화재 줄 잇는 배터리, 렌털 정수기보다 관리 안 돼”

입력 | 2022-10-26 03:00:00

카카오 ‘먹통’ 사태 야기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대책은



24일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자신의 실험실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사고 원인을 조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왼손에 들고 있는 네모반듯한 배터리는 이번 카카오 먹통 사태를 야기한 배터리와 유사한 형태다. 천안=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5일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지하 25cm, 세로 15cm 크기 배터리서 불꽃이 일었다. 정전이 돼도 데이터가 정상 가동되도록 전력을 공급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와 연결된 배터리였다. 단 한 개의 배터리가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 먹통 사태를 불러온 셈이다. 카카오의 모든 서비스가 복구되는 데는 나흘이나 걸렸다.

이번 사태로 2018∼2019년 빈발했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다시금 소환됐다. UPS는 용도는 다르지만 ESS 같은 이차전지의 일종이다. 당시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를 주도했고, 이번 UPS 사고 조사에도 참여하는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로부터 배터리 화재의 원인과 안전 대책을 들어봤다.》

UPS와 ESS 화재 원인을 이해하려면 공통적으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장치에서 불이 났다는 점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UPS는 ESS와 같은 이차 전지이지만 그동안 납축전지를 주로 썼기 때문에 사고가 뜸했다. 그런데 데이터센터처럼 대용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리튬이온배터리가 납축전지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판교 데이터센터 역시 납축전지를 쓰다가 2016년 리튬이온배터리로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튬이온배터리 사용이 계속 늘어나는데 안전성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사실 환상적인 기술이다. 납축전지에 비해 작고 가볍다. 같은 부피당 저장되는 전기에너지 밀도가 납축전지의 3배나 된다. 자동차 배터리가 바로 납축전지인데 그 크기를 생각해 보라. 납축전지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려면 건물이 몇 개 더 필요하다. 배터리 수명은 10배 길다. 그만큼 비싼 것이 단점이다. 화재가 나면 1000∼1500도까지 올라가는 ‘열폭주’ 현상이 일어난다. 리튬이온배터리 내부에서 산소가 계속 발생하므로 전소될 때까지 불을 끌 수가 없다.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면서 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막을 뿐이다. 이번 카카오 사태에서 전원을 차단한 채 8시간이나 화재를 진압한 이유다.”

―2017년 8월 전북 고창풍력발전 ESS 화재가 처음 보고되면서 리튬이온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다. 지금까지 38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의 조사 결과 그 원인은 무엇이었나.

“2019년 정부가 1차 민관합동 ESS 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 결과 네 가지 화재 원인을 밝혀냈다. 첫째, 배터리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부실했다. 둘째, 배터리와 배전반 등 주변 설비를 통합·제어하는 시스템이 서로 충돌했다. 셋째, ESS를 설치한 장소가 엉망이었다. 주로 산지나 해안가에 조립식 건물로 지어지는데 현장조사를 나가 보니 뱀도 기어 다니고 풀도 자라고 있더라. 이 세 가지 원인, 배터리 외부 원인은 ESS 제조·설치·운영 기준을 만들어 해결했다. 당시 ESS가 설치된 1500곳을 점검했고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킬 때까지 모두 가동을 중단시켰다. 2020년 사고가 2건으로 급감했다. 마지막으로는 배터리 자체 결함이 의심됐다. 배터리를 해체해 보니 결함의 흔적은 발견했으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하진 못했다. 조사 기간이 반년이라 사고 배터리와 사용 기간을 똑같이 맞춰 실험할 수 없었다. 더욱이 배터리 불량률이 ‘0’에 수렴하고 있어 예외적인 경우라고 봤다.”

―카카오 먹통 사태를 야기한 UPS 화재 원인도 ESS 화재 원인과 동일한 것인가.

“UPS 사고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라 ESS 조사 결과에 근거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UPS와 ESS는 운전하는 방법이 다르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태양광에너지를 낮에 저장했다가 밤에 쓰는 식으로 충전과 방전을 반복한다. 반면에 UPS는 100% 충전을 해 뒀다가 비상시에만 대체 전력으로 사용한다. ESS는 2차 화재사고 조사 이후 충전율을 90%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배터리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UPS는 항상 100% 전압이 걸린 상태인데 혹시 이 차이가 배터리에 가혹한 환경인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휴대전화를 오래 충전하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번 판교 데이터센터의 경우 건물 준공 시 인가를 위한 검사 대상에 UPS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UPS는 사용한 지 60∼70년 정도로 ESS보다 훨씬 오래됐다. UPS가 전기안전법상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납축전지를 사용해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법상 특수설비로 등록해 안전기준, 성능기준을 마련했고 국무조정실 사전 규제 심사에 올라가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UPS를 사용하는 곳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데이터센터 자동화공장 등 데이터를 쓰는 곳은 다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관리할 근거가 마련됐다.”

―리튬이온배터리는 휴대전화와 노트북, 전기차 등 충전이 필요한 모든 전지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제품 사용도 위험한 것인가.

“리튬이온배터리는 상용화된 지 30년이 지나지 않았다. 기술이 완성되어 가는 단계에 있다. 그러나 일상 속 기기들은 아주 작은 용량의 배터리라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문제는 MW(메가와트·100만 W)급 대용량 전기가 필요한 곳들이다. 현재 리튬이온배터리를 쓰는 UPS가 설치된 사업장이 전국에 241곳이다. 발전소에는 거의 들어가 있다. 야외에 설치하는 ESS와 달리 UPS는 건물 안에 설치한다. 이번 화재에서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하지만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고 유독가스가 배출되면 건물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배터리 안전성을 개선할 대책이 있나.

“배터리는 아는 만큼 성능이 나고 아는 만큼 안전하다. 휴대전화 배터리만 봐도, 사용자에 따라 오래 쓰기도 하고 금방 닳기도 한다. 배터리는 전기·통신·반도체·화학 분야가 융합된 기술이다. 이에 정통한 전문가가 다뤄야 한다. ESS 현장 조사를 갔더니 옷 공장을 운영하다가, 임대사업을 하다가 ESS 사업에 뛰어든 분도 있었다. 그래서 배터리 렌털 서비스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수기를 빌리면 정기적으로 필터를 갈아주는 것처럼 전문가가 유지·보수를 하도록 하는 거다. 배터리 사고가 나기 전에 반드시 징조가 있다. 하루 전날도 아니고 한두 달 전부터 가스가 배출된다거나 하는 신호를 보낸다.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다. 잠수함 안에도 UPS가 설치되지만 사고 난 적이 없다. 매일 전문가가 점검하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화재 진압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기존 소화약제로는 진압이 어렵다.”

―대책이 있는데도 실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안전하게 유지·관리하면서 쓰는 것이 최선인데 여기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기업이 이 비용을 감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2013년 일론 머스크가 ‘ESS는 세상이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라고 했다. 전기는 생산하자마자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전력예비율을 10∼15% 둔다. 과잉 생산하고 버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ESS가 생기면서 전기를 저장할 수 있게 됐다. 우리 같은 자원 빈국에선 꼭 필요한 기술이다.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1을 점유한 성장 산업이기도 하다.”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 교수훗카이도(北海道)대학원 전기공학 박사로 한국전기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2013년부터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전기에너지저장시스템(ESS) 국제표준화회의 환경 분야 의장으로서 ESS 기술 표준 개발에 참여한 배터리 전문가다.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안전전문위원으로 1∼4차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산학기술학회 회장과 대한전기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천안=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