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통신사에서 운영하는 팩트체크 사이트에 올라온 ‘가짜 사진’. 9월 핀란드 국경 검문소 앞 차량 행렬을 촬영했다며 SNS에 올라온 자료인데, 확인 결과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빨간색 X표를 한 채 공개돼 있다. 팩트체크 홈페이지 캡처
송은석 사진부 기자
8월 서울 강남 지역에 갑작스러운 집중호우가 내려 도로가 잠기는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뭘까? 많은 이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서초동 현자’를 떠올릴 것이다. 사거리 한복판에서 자신의 침수 차량 보닛 위에 앉아 망연자실해 있던 남자의 모습. 사진기자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뉴미디어 시대에는 사진을 잘 찍는 것뿐만 아니라 잘 찾는 것도 중요해졌다. 그 중심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다.
트위터 같은 SNS는 인생의 낭비며 무(無)쓸모니 하지 말라는 ‘트인낭’(트위터는 인생의 낭비)이란 유행어가 있다. 그러나 기자들에게 SNS는 뉴스의 보고(寶庫)다. 시키지 않아도 전 세계 사람들이 실시간 이슈를 올리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흔치 않던 시절엔 사건 사고를 기록하는 건 사진기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인들도 호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현장을 촬영한다.
사진기자들이 재난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사고 수습이 됐거나 잔해만 남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카메라를 갖고 있단 이유만으로 출입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7월 미국 독립기념일 일리노이주 하이랜드파크에선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총소리에 당황해 도망치는 사람들, 범인의 모습까지 사진과 영상으로 담은 건 행사에 참가했던 일반 시민들이었다. 정작 외신 취재진은 포토라인에 막혀 제대로 된 모습을 담을 수 없었다. 이처럼 보도 사진보다 SNS에 올라온 사진, 영상이 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이미지들은 촬영 기술은 떨어져도 갓 잡은 물고기처럼 생생한 현장성을 담고 있는 게 특징이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타사와 똑같은 이미지들과 차별되는 단독성 효과도 있다.
2021년 12월 제주도에 규모 4.9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였다. 그때 인터넷에 누군가 ‘실시간 제주 상황’이라며 아스팔트가 쩍쩍 갈라진 도로의 사진을 올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사진은 몇 년 전 해외에서 촬영된 사진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렇게 SNS에 올라온 사진은 ‘가짜’인 경우가 종종 있다. SNS 사진을 바로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6월 집중호우로 수원 세류역이 침수됐을 때에도 한 시민이 맨발로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는 사진이 트위터와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됐는지 최초 사진을 올렸던 이는 트위터에서 원본을 삭제했다. 사실 여부를 알기가 어려웠다. 세류역 사무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한 후에야 해당 사진을 지면에 게재했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건너는 마음으로 게재해야 하는 것이 SNS에 올라온 사진이다.
진정될 기미가 없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속에서 가짜 뉴스는 더 판을 친다.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만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했을 때 러시아를 탈출하려는 사람들로 핀란드 국경 검문소 앞 차량 줄이 35km에 달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관련 글에는 검문소 앞 길게 줄을 선 자동차 행렬의 영상도 함께였다. 그러나 필자가 알아보니 해당 영상은 동원령 발표 전에 촬영된 영상이었으며 폐쇄회로(CC)TV를 통해 살펴본 핀란드 국경 검문소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최근 로이터나 AFP 같은 외신들은 팩트 체크 관련 코너를 따로 운영하면서 SNS에 범람하는 낚시성 뉴스 이미지들을 바로잡고 있다. 사진 오보가 언론사의 신뢰를 갉아먹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필자도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사용하기 전엔 반드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출처와 촬영 시기를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래도 혹시 가짜 뉴스 사진일까 봐 염려돼 이튿날 새벽 신문이 나온 다음 한동안 불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앞으로도 언론이 SNS 자료를 활용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가짜 사진’과의 전쟁도 이어질 것 같다.
송은석 사진부 기자 silver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