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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팝으로 돌아온 25년차 밴드[김학선의 음악이 있는 순간]

입력 | 2022-10-26 03:00:00

〈37〉 허클베리핀 ‘적도 검은 새’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홍익대 앞. 간단하게 줄여 ‘홍대 앞’이라 부르는 곳이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바뀌는 동안 홍대 앞도 많이 바뀌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높은 호텔이 연이어 들어섰고, 춤을 추는 클럽 앞에는 이른 저녁부터 젊은 남녀가 줄을 서 있다. ‘걷고 싶은 거리’를 ‘굽고 싶은 거리’라 비꼬아 부를 만큼 술과 고기의 거리가 되었고, 케이팝 커버 댄스의 성지가 됐다. 하지만 20여 년 전이건 지금이건 그 거리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는 건 같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젊은이들은 홍대에서 무얼 했을까. 라이브 클럽을 찾았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해진 지금의 홍대 앞과 문화를 그래도 연결시킬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홍대 앞을 지켜온 라이브 클럽들 때문이다. 허클베리핀은 이곳에 라이브 클럽이 막 들어서던 1997년부터 활동해온 관록의 밴드다.

이들은 1998년 발표한 첫 앨범 ‘18일의 수요일’로 단숨에 홍대 앞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다. 3년 정도의 간격으로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평단이 사랑하는 밴드’란 수식어도 얻었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TV에 나오지 않으며 한국에서 25년간 밴드를 유지한다는 건 극한직업에 가깝다. 마음의 병을 앓은 멤버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밴드 운영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3년 간격으로 발표되던 앨범은 7년 만에 나오기도 했다.

얼마 전 발표된 새 앨범 ‘The Light Of Rain’은 4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오랜 시간 밴드를 지켜온 이기용과 이소영. 지난 앨범부터 합류한 멀티 플레이어 성장규까지 3인조 체제로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이기도 하다. 드럼 포지션이 따로 없는 3인조라는 건 전통적인 형식 대신 좀 더 스튜디오 지향의 밴드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들은 4년 동안 자신들의 작업실 안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험을 했다.

수많은 시도와 실험은 결국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실제 ‘The Light Of Rain’에는 기존 허클베리핀과는 다른 사운드가 가득하다. 앨범의 첫 곡 ‘적도 검은 새’부터 변화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간 어둡고 침울한 음악을 들려줬던 것과 비교하면 이 노래는 들으며 춤도 출 수 있을 것 같다. 허클베리핀의 음악에서 ‘춤’이란 낱말을 연상한다는 것부터 엄청난 변화다. 그만큼 사운드와 비트의 질감 자체가 달라졌다.

이는 멤버들이 철저하게 지금 현재의 팝 사운드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빌리 아일리시, 두아 리파, 테일러 스위프트 등 허클베리핀과는 무관해 보이던 음악가들의 사운드가 탐구 대상이었다. 이를 자신들의 음악에 적용했다. 말하자면 동시대적인 감각을 담아내면서도 허클베리핀만의 어두움이 주는 서정성은 그대로 지켜냈다. 그렇게 자신들의 경력을 갱신했다. 세계 속에 한국(K-)의 음악(Pop)을 알리는 것도 의미 있지만, 중견 음악가들이 있어야 그 내실이 더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허클베리핀이 바로 그런 밴드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