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마흔 살이 되어 얼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 보면서 먹고살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라고 가수 신해철(1968∼2014)은 생전 마지막 강연에서 말했다. ‘돈의 심리학’의 저자 모건 하우절은 돈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당금은 자기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은 만큼 하는 자유라고 말했다. 성공과 돈의 가치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40대가 되면 어디에서 인생의 ‘환승’을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50대는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하는 나이다. 자신이 오래 일했던 ‘주된’ 직장에서 나오는 평균 연령이 49세라는 통계도 이런 현상을 보여준다. 이런 고민은 주로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 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위스키 바를 운영하는 박성환 대표 역시 40대에 비슷한 고민을 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후 기업에서 아이스크림 개발 일을 했던 그는 패션과 화장품 등의 사업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했던 식음료 분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되고 40대 중반에 부산 남천동 주택가에 10명이 채 들어가지 않는 작은 규모의 위스키 바를 열었다.
오래전 이 칼럼을 통해 E로 시작하는 다섯 개 단어를 중심으로 이력을 정리해 보도록 추천한 적이 있다. 오늘은 ‘환승역’을 앞에 두고 고민하는 직장인에게 이를 여섯 가지로 확장하고, 질문의 형태로 제시한다.
첫째, “나는 그동안 어떤 프로젝트들을 경험(Experience)했는가?” 직장과 직책의 나열이 아닌 자신이 했던 의미 있던 경험을 적어보자. 박 대표의 경우에는 직장과 사업을 통해 식품 분야 및 소비자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험을 쌓아 왔다. ‘잘하는 일’은 결과가 좋았던 것이고, ‘좋아하는 일’은 과정을 즐겼던 일이다. 이를 표시하며 적어보자.
둘째, “그런 경험으로부터 쌓인 나만의 전문성(Expertise)은 무엇인가?” 박 대표에게 바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제품 자체에 대한 전문성보다 고객과의 소통을 더 중요한 전문성으로 꼽았다.
셋째, “나의 전문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Evidence)는 무엇인가?” 그는 과거의 실적에 머물지 않고 최근에도 부산 지역 위스키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프로젝트 등을 만들어 가고 있었고, 고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소통 등에서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섯 번째, “나의 전문성을 공개적으로 추천해줄 사람(Endorser)은 누구일까?” 내가 두 번에 걸쳐 박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후에도 다시 나와 일하고 싶을까?
마지막으로 “나의 전문성은 돈과 교환(Exchange)할 수 있는 것인가?” 40대 이후 취미를 즐기려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만의 전문성은 사람들이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고객들은 박 대표의 제품 추천과 서비스, 그리고 그의 공간만이 제공하는 분위기에 돈을 지불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어려웠던 코로나19 시기를 잘 버텼다. 만약 그가 욕심내어 큰 규모의 사업을 했다면 어땠을지 모른다. 그는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하면서 50대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40대 중반에 시작한 위스키 바를 현재의 모습 그대로 20년 동안 유지할 생각이고, 그 이후에는 좀 더 확장하거나 다른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단골손님들과 함께 나이 들어 가면서 80대까지 유지하고 싶어 하는 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바를 나섰다. 행운을 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