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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 대처주의’ 사로잡힌 수낵, 영국 못구한다”

입력 | 2022-10-26 10:19:00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리시 수낵은 영국을 구하지 못한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언론인 키미 차다이다.

지난 3월 리시 수낵이 수퍼마켓의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주유하는 모습의 사진을 찍었다. 스스로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낵은 재무장관으로서 유가를 낮출 것임을 홍보했다. 그러나 헛짚었다.

자동차는 수수한 기아 리오로 수낵의 차가 아니었다. (수퍼마켓 직원 것이었다.) 주유소에서 수낵은 비접촉 지불 방식을 쓸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도 보였다. 수낵이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거리가 멀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수낵이 서민 생활을 모른다는 사실은 곧 검증될 것이다. 얼핏 수낵은 유리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44일 만에 물러난 리즈 트러스는 “경제적 환상”을 경고한 것이 뛰어난 선견지명이었음을 입증했다. 또 분열된 보수당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그가 총리에 당선하면서 금융시장이 진정되기도 했다.

수낵이 침착하고 유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이끌 나라와 크게 유리돼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제가 침체되고 지역 간 분열이 심하며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한 영국은 공감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확신에 찬 작은 정부 대처주의자로서 대중의 삶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수낵은 그런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수낵 지지자들은 2020년 3월 정부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동안 종업원 임금의 80%까지 지원함으로써 실업 사태를 막은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수낵이 이 정책을 서둘러 끝내려 했고 300만 명의 자영업자들을 배제했음을 볼 때 그가 관대하다고 볼 순 없다.

수낵은 채 두 달도 못돼 팬데믹 지원금 점진적 축소를 발표했고 연말에 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팬데믹 충격 완화를 위한 각종 소액 복지 지원금 삭감을 서둘러 영국의 복지국가 역사를 하룻밤새 끝장냈고 국가 지원 전반을 못마땅해 했다. 그는 늘 “화수분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는 생활비 급증에 고통을 감내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3월 수낙은 곤경에 처한 가정에 수십억 파운드를 지원해 물가상승을 상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겉보기엔 꽤 과감한 듯했지만 실상은 태부족이었다.

수낵은 보수당 내에서조차 가장 어려운 계층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대적인 지원책이 없으면 130만 명이 절대 빈곤에 빠질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그런데도 수낵이 내놓은 빈곤층 지원 정책은 런던타임즈에 의해 “부족하고 효과가 없으며 보수당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재무장관 시절 수낵이 보여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선별적이고 피상적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열정이 부족한 지도자가 이끌기에는 영국의 위기가 심각하다. 물가가 10% 넘게 올랐다. 생활수준이 악화하고 영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푸드 뱅크가 부족하게 될 것이라고들 한다. 1월엔 에너지 부족이 닥친다. 4월이면 연료비 지출이 늘어나 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1070만 명이 된다. 앰뷸런스가 오지 않아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경제가 취약해 영국은 내년에 주요 7개국(G7) 가운데 물가는 가장 높고 성장은 가장 낮을 전망이다.

이런 문제들은 구조적인 것이 맞다. 그러나 수낵도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 그는 단 한번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도전하고 바로잡겠다는 진정한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선진국 중 최악인 지역 간 불평등 문제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재무장관 사무실에 앉아 “못사는 동네” 예산을 필요하지도 않은 부자동네로 이전했다. 400억 파운드의 복지 지출과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헉헉대는 경제를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은 입에 발린 소리였다.

12년 동안 집권해 온 보수당은 정책이 거의 바닥났다. 수낵은 복지 지출을 줄이고 부담을 부자가 아닌 보통 사람에게 지움으로써 예산 균형을 취하겠다는 정책만 기꺼이 채택할 것이다. 그가 대처식 작은 정부, 개인주의, 공공복지 지출 억제에 사로잡혀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지난 여름 총리 경선에서 트러스에 패배할 당시 수낵은 텔레그라프에 “난 대처주의자요, 대처주의자로 출마했고, 대처주의자로 통치할 것”이라고 썼다.

수낵이 무슨 정책을 펼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총리 경선에 승리할 때까지 언론 앞에 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무장관으로서, 지난 여름 경선에서 보인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수낵은 적정 예산이라는 미명 아래 공공 지출과 사회 복지를 줄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정책이라도 제대로 운영하고 진지하게 편다면 보수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수낵이 총리직을 시작하는 지금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보수당을 구할 순 있을지 몰라도 나라를 구하진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