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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확산’ 10대그룹도 유동성 점검 강화…“투자 줄이고 현금 확보”

입력 | 2022-10-26 15:36:00

뉴스1


고강도 글로벌 긴축에 따른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와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현금 유동성이 말리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이 재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주요 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계획했던 회사채 발행 물량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미매각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단기간에 금리가 급등한 데 이어 레고랜드발(發) 금융시장 경색까지 발생해 자금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이 투자 축소, 비용 절감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대규모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삼성 비롯해 SK, 현대자동차 등 주요 그룹들은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미미하다. 그러나 경제 불확실성 장기화를 대비해 자금 운영·조달 계획을 재점검하는 등 비상경영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신용등급 ‘탄탄’ 대기업 계열사도 회사채 미매각…AAA 한전도 유찰

26일 업계에 따르면 태양광 사업을 하는 한화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신용등급 AA-)은 지난 20일 회사채 1500억원어치 발행을 계획했으나 주문이 130억원에 그쳐 대규모 미매각이 생겼다. 그마저도 연 6%의 금리를 내세운 2년물에만 130억원의 수요가 있었고 최대 6.168%의 금리를 제시한 3년물의 경우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올해 1월 발행한 회사채(2300억원)에 7600억원의 기관 수요가 몰렸을 때와는 시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LG유플러스(신용등급 AA)는 지난 19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1000억원어치만 유효 주문이 들어왔다. 이후 500억원어치는 주관사가 떠안아 발행을 가까스로 마무리했다.

한국전력공사(AAA)는 지난 17일 5%대 이례적인 고금리를 제시하며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1200억원어치가 유찰됐고 같은 날 한국도로공사(AAA)도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섰으나 아예 전액 유찰됐다.

◇‘3高’에 레고랜드 사태도 덮쳐 투자심리 위축

통상 회사채는 국채보다 신용도가 낮아 국채보다 더 많은 이자를 줘야 발행할 수 있어 국채 금리 상승 국면에선 회사채 금리도 따라 오른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위기가 커졌고 이 와중에 강원도 ‘레고랜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단기금융시장 경색에 불을 붙였다.

이달들어 지난 24일까지 신규 발행된 부동산 PF 자산유동화증권 10조7844억원 중 89%인 9조5882억원의 만기가 3개월 미만인 단기사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가 높은 급전이 아니면 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업권별 부동산 PF 대출현황 파악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등 리스크 상황을 매일 점검하고 저축은행에 대해서는 자산건전성 분류와 충당금 적립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회사채를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할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올해 금리 인상기에 채권 평가손실을 우려해 ‘북 클로징’(book closing·회계연도 장부 결산)을 한 것도 시장 경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채권시장 경색이 길어지면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비상등이 켜질 수밖에 없다.

◇ 삼성, 계열사별 회사채 현황 파악…현대車·SK하이닉스, 투자 규모 축소

10대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도 비상경영회의를 열고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한 자금 확보 방안 등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별 회사채 현황 파악에 나섰고 현대차그룹은 투자 규모를 낮춰 잡으며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구자용 현대차그룹 IR 담당 전무는 “연초에 말씀드린 투자계획 9조2000억원 목표에서 8조9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며 “대외 변동성 확대에 따른 유동성 확보와 투자계획 일부 수정에 따른 영향”이라고 했다.

SK그룹은 계열사별로 자금 경색에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자금흐름의 변동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도 최근 열린 ‘CEO 세미나 2022’에서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데이터 기반 경영전략 실행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각 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주요 계열사인 SK하이닉스도 이른바 ‘반도체 한파’를 대비해 내년 투자액을 올해의 10조원 후반대 대비 50% 이상 줄이기로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였던 2008~2009년 업계 투자액 절감률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포스코그룹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일찌감치 ‘현금중심 경영’에 나섰다. 한화솔루션 회사채 미매각을 겪은 한화그룹도 “선제적 위기 대응과 효율적 자금 관리에 차질 없도록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