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에 진심인 사회로]〈16〉스페인 보행우선구역 ‘슈퍼블록’ 거주자 차량-구급차 등만 통행 허용, 시속 10km 제한… 우회 일방통행 보행자들 마음껏 걷거나 뛰놀아… 통행량 줄며 교통사고 79% 줄어 도로 소음-발암물질도 감소 효과, “사고걱정 없이 걷는 자유 누려”
“바르셀로나는 운전자들에게는 갈수록 불편한 도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행자 안전과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다니엘 알시나 바르셀로나시 슈퍼블록 전략기술본부장)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도심에서 2km 거리에 위치한 산안토니 지구. 입구엔 보행자우선구역 표시와 함께 차량 속도를 10km 이하로 제한한다는 규정이 적혀 있었다. 도로 양쪽에는 테이블과 벤치가 여러 개 놓였고, 시민들은 이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체스게임을 하는 등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간간이 차가 지나갔지만 시내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 보행자 여유 느낄 수 있는 ‘슈퍼블록’
바르셀로나에 슈퍼블록이 처음 등장한 건 1990년대다.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오염이 심해지자 시 당국은 2015년경부터 슈퍼블록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현재 바르셀로나시에는 슈퍼블록 30여 곳이 조성돼 있다.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 지역 슈퍼블록에서 한 시민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슈퍼블록은 보행 친화적으로 설계된 공간으로 녹지, 벤치 등 휴식 시설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거주자 차량이나 응급차 등 특별한 목적이 있는 차량만 우회로를 통한 서행 운행이 가능하다. 바르셀로나=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시민들은 앞으로 ‘슈퍼블록’을 더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빌라 씨(25)는 “차량이 갈 수 없는 곳이 늘어나니 운전자들은 다소 불편하겠지만 지속가능한 도시로 가기 위해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보행자 안전뿐 아니라 대기오염 등을 생각하면 보행자 위주의 공간을 늘리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 보행자 사고 줄고 대기 유해물질 급감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알시나 전략기술본부장은 “슈퍼블록은 극심한 대기오염 때문에 시작됐다”며 “공해를 줄이기 위해 차량 통행에 제한을 뒀는데 이후 자연스럽게 보행자 안전이 확보됐고 슈퍼블록 및 인근 지역 환경이 대폭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조성 초기에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알시나 본부장은 “배달업체, 택시 등 생계를 위해 차량이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 처음에 슈퍼블록 조성을 격렬히 반대했다”며 “지금은 시민 공감대가 상당 부분 이뤄진 상태”라고 했다. 그는 또 “2009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청계천이 인상 깊었다”면서 “서울도 슈퍼블록 등의 방식을 참고해 보행친화도시로 변화한다면 더 매력적인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바르셀로나=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