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치로 ‘無성과 정부’ 우려 커져 2년 취임덕 후 3년 레임덕 대비해야
박중현 논설위원
반쪽이 텅 빈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 윤석열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극단적으로 둘로 쪼개진 나라에서 0.73%포인트 차로 대통령이 된 만큼 각오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속이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국정철학이 담긴 첫 예산안을 들고 연단에 올랐는데 헌정사상 첫 야당 보이콧이라니. 혹시 이런 걱정에 식은땀이 나진 않았을까. ‘이러다 공약 하나 실현 못하고 임기 5년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대통령이 스타일을 구긴 정도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막아설 기세다. 그 바람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 ‘윤석열표 정책’들은 줄줄이 무산 위기다.
올해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경감은 법 개정 시한을 넘겨 사실상 무산됐다. 대선 기간 중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완화를 약속한 사안인데도 그렇다.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의 핵심 과제인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도 난망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3%포인트 올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2%)보다 크게 높아진 25% 법인세율을 원상복구하자는 것인데도 야당은 ‘초부자 감세’라며 절대 반대다.
지난 정부와 이 대표에 대한 적폐청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우파 지지층에 ‘정부 정책 마비’는 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있다. 내년까지 ‘공정과 상식’을 철저히 실현해 내후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모두 해결될 문제라고. 하지만 30% 안팎을 맴도는 대통령 지지율, 민주당 몽니에도 늘지 않는 국민의힘 지지 기반을 고려할 때 총선 승리는 쉽지 않아 보인다. 2년 취임덕에 이은 3년 레임덕이 올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뜻이다. 그때가 되면 야권은 ‘이룬 게 아무것도 없다’며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할 것이다. 플랜B가 필요한 이유다.
총선 후에도 여야의 극한 대치가 계속돼 ‘5년 무성과 정부’ 가능성이 커질 때 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성과 없는 5년을 꼭 해야 할 일을 해낸 4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통령 임기 1년과 맞바꿔서라도 꼭 해내야 할 정책이 바로 연금개혁과 재정준칙 도입이다. 현 정부 치하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지 않은 야당 지지층이 두터운 만큼 야권도 호응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나라의 미래를 고려하면 누군가 당장 총대를 메야 하지만 ‘표 의식하는 정치인은 절대 못 한다’는 게 연금개혁이다. 정치권에 빚진 게 가장 적고 이미 대통령 자리에 있는 윤 대통령이 적임자다. 대통령이 이번 시정연설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지만 헌법, 법률이 정하는 재정준칙을 못 만들면 돈 퍼주기를 선호하는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 모두 허사가 된다.
물론 현 정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YS의 금융실명제, DJ의 인터넷 강국, 노무현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같이 나라의 물길을 바꾼 정책 업적은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서 더 절실해야 하고, 꼭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