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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코앞서 대규모 대만 기업 엑스포… “中 떠나 美와 손잡는다”[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 2022-10-27 03:00:00

미국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12일(현지 시간) 열린 ‘대만 엑스포 2022’에서 관람객들이 대만의 드론, 반도체, 통신장비 등을 둘러보고 있다. 이 행사에는 반도체와 미래형 자동차, 사이버 보안 등 대만의 주력 산업 분야 84개 기업이 참가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미국과 대만의 경제 협력이 크게 강화되면서 양국 간 무역 거래는 최근 3년 새 50%가 증가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정부는 대만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 초(超)집중(laser focused)하고 있습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700m가량 떨어진 워싱턴 ‘로널드 레이건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대만 엑스포 2022’ 개막식 연설에서 머리사 라고 미 상무부 부장관은 이같이 강조했다. 라고 부장관은 “대만은 무역 파트너이자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투자 국가”라며 “미국과 대만은 파트너십을 통해 강해지고 있으며 서로의 경제 안보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만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기업 엑스포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72년 미중 데탕트(긴장 완화)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따르는 미국과 외교관계가 단절돼 밀려났던 대만이 최근 미중 갈등 속에 정치 외교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미국과 밀착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대만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까지 떨어졌던 대미 수출은 15%까지 상승하며 중국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최첨단 반도체 생산국으로 ‘실리콘 방패’를 앞세운 대만과 미국의 경제 관계는 미중 갈등이 고조될수록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이른바 ‘칩(chip)4’라고 알려진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에 대만을 참여시킨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미-대만 21세기 무역 이니셔티브 협정 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반도체 규제, 대만에 기회”
대만 엑스포 2022에는 반도체와 미래형 자동차, 사이버 보안, 건강관리(헬스케어)같이 대만이 앞세우고 있는 산업 분야 84개 기업이 참가했다. 제임스 황 대만 대외무역개발위원회(TAITRA) 회장은 “대만은 미국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며 “이번 엑스포에는 대만의 최고 기술과 비즈니스 솔루션을 가져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만 엑스포 2022’에 참가한 대만 반도체 업체 ‘윈 반도체’의 데이비드 댄질리오 선임 부회장. 그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앞선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어 기회의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대만 반도체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엑스포에 참가한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윈(win)반도체 데이비드 댄질리오 선임 부회장은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협력에 대해 “대만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댄질리오 선임 부회장은 “이미 포천지 선정 500위 안에 드는 여러 미국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다”며 “더 많은 미국 기업이 대만 기업과 손을 잡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대만은 지난해 기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비중이 전체 반도체 수출의 62%에 이르지만 댄질리오 선임 부회장은 “중국 시장이 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과의 반도체 협력에도 중국이 대만의 반도체 수출을 방해하려는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국의 반도체 규제로 중국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고 2, 3세대 앞선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의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스마트 자동차와 의료 분야 기업들도 대거 엑스포에 참여했다. 이 분야들은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2기 출범 후 대만 정부가 6대 핵심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엑스포를 계기로 열린 스마트모빌리티포럼에서 티머시 드레이크 ITS 부회장은 “대만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정보통신기술”이라며 “우리는 미국 스마트 모빌리티 공급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가 됐다”고 강조했다.
“대만 기업, 중국 탈출 이미 시작”
미국과 대만의 경제 밀착은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2018년 이후 본격화됐다. 2018년 760억 달러 수준이던 미국과 대만 무역 거래액은 2020년 900억 달러로 늘어난 뒤 지난해에는 1141억 달러로 급증했다. 3년 사이에 무역 거래가 50% 증가한 것. 이 같은 증가 추세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의 대만에 대한 수출 주문 총액은 2001억 달러에 이른다.

반면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 비중은 2018년 21.6%에서 올 상반기 17.3%로 크게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도입된 중국 제품에 대한 무역301조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화웨이 수출 통제, 바이든 행정부가 단행한 반도체 및 핵심 기술 수출 규제와 미 의회의 ‘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 등으로 중국과의 무역 거래가 줄어든 혜택을 대만이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미중 무역갈등은 중국이 떠오르며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서서히 존재감을 잃어가던 대만 경제에 결정적인 반등의 기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대 들어 세계 각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동안 대만은 중국의 반대로 주요국과 FTA를 맺지 못했다. 그러자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1%에서 2015년 1.4%까지 떨어졌다. 반작용으로 대만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24.4%에서 2015년 41.8%까지 치솟으며 중국에 대한 급격한 경제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미국이 대만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대만 기업의 중국 이탈이 본격화되는 등 대만의 높은 중국 경제 의존도에도 변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5일 대만 기업 경영자 52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대만 기업 25.7%가 이미 생산시설 일부를 중국 밖으로 옮겼으며 33.2%는 이전(移轉)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대만 기업 경영자 76%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美-대만 무역협정 타결 가시화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올 8월 협상에 착수한 미국과 대만의 무역협정 체결에도 속도가 나고 있다. 샤오천중 대만 협상 대표는 이달 18일 홍콩 유력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무역협정 11개 요소 중 일부 논의는 매우 성숙된 상황”이라며 “내년 말 발효를 목표로 올해 안에 조기 타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대만 무역협정에는 농업 분야에 대한 미국 시장 진입 확대와 함께 디지털 경제, 환경과 노동 등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핵심 내용들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대만이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경제협력체에 포함되는 셈이다. 후쥔리 대만 국립 양밍자오퉁대 교수는 SCMP에 “협정 조기 타결은 대만이 더욱 미국에 가까워질 것을 보여준다”며 “대만은 경제 외교 국방 등에서 미국과 다차원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8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도 미국과 대만의 밀착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하원 중간선거에서 현재 우세를 보이고 있는 공화당은 대만을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 지정하고 대만경제문화대표부를 대만대표부로 격상시키는 ‘대만정책법’에 찬성하는 등 대만과의 관계 강화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