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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힌 책-사물, ‘나’를 표현하는 수단… 그 사람 인생이 담겨”

입력 | 2022-10-28 03:00:00

‘책거리: 우리 책꽂이…’展 기획
조너선 파인 빈세계박물관장



조너선 파인 빈세계박물관장은 “모든 한국의 옛것을 그대로 품은 채로 새로운 길을 모색한 현대 책거리에 매료됐다”며 웃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예상 못 했어요.”

올해 4월 21일 시작한 오스트리아 국립빈세계박물관의 특별전 ‘책거리: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을 한국민화학교와 함께 기획한 조너선 파인 관장(53)이 말했다. 국내 젊은 세대에게도 생소한 조선시대 책거리를 다룬 현대 민화(民畵) 작가 31명의 작품으로 구성한 이 전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서 관람객이 몰려든 것. 다음 달 1일까지 예정했던 전시를 내년 4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1, 2년 뒤 전시 일정을 미리 짜는 박물관으로선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한국을 찾은 파인 관장을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그림손에서 만났다. 이 갤러리에서는 현대 민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부임한 뒤 ‘시대를 앞서가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어 선택한 첫 번째 전시”라며 “(성공하리란) 확신은 있었지만 그 예상을 몇 배는 뛰어넘었다”며 웃었다.

“팬데믹 여파로 화상으로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화면 속에 비친 ‘우리 뒤의 책장’이 중요해진 거죠. 책장은 물론이고 거기에 놓인 책을 포함한 여러 물건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어요. 그런 점에 조선 책거리는 시대를 내다본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시 부제인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도 직접 지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사물로 가득 채운 책장엔 누군가의 인생이 담겼다”며 “한국의 전통 회화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서 깊은 컬렉션을 소장한 우리 박물관의 정체성과도 잘 어울렸다”고 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가운데는 국내에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은 청년 작가가 많다. 파인 관장은 “진정한 예술의 가치는 값이나 명성에 있지 않다”며 “젊은 감각으로 책거리 민화에 ‘커피 잔’ ‘태블릿 PC’도 그려 넣어 문화적 공감대가 높았다”고 했다.

“처음엔 ‘이게 뭐지’ 하며 먼발치에서 보던 관람객들이 책거리에서 익숙한 물건을 발견하고 어느새 다가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책거리에서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책을 발견하고 한참을 웃던 이도 기억나네요. 책거리를 통해 유럽과 한국의 문화가 하나의 세계로 확장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파인 관장은 민화의 매력에 대해 “한국 문화가 가진 에너지와 닮았다”며 “평범한 이의 삶과 철학을 담아내기 때문에 세계 어디서도 통할 보편성을 지녔다”고 평했다.

“요즘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가 한국에 대해 더 알길 바라고 있잖아요.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대중문화뿐 아니라 역동적인 역사를 간직한 나라죠. 한국 역사 자체가 하나의 서사라고 생각합니다. 빈세계박물관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선보이는 ‘유럽의 창문’이 되고 싶습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