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회장 취임] 취임사 없이 사내 게시판에 글 “선대 업적 계승에 무거운 책임감, 지난 몇년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추격자 거센 도전” 위기감 드러내 사법 리스크로 10년만에 회장 자리… “사회와 함께하는 삼성” 책임 강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일성에서 삼성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인 ‘인재’와 ‘기술’을 수차례 강조했다. 안팎으로 당면한 위기 속에서 처음 회사의 기틀을 두었던 가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 위기감 속에서 ‘뿌리’ 강조
27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별도의 공식 취임사 없이 소회와 각오를 사내 게시판에 공유했다. 이틀 전 이건희 회장 2주기를 맞아 사장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전했던 내용이다. 그만큼 회장으로서 대외적인 메시지를 내는 것보다 위기 속에서 내부 조직을 탄탄하게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사내 게시글에서 이 회장은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최근 일련의 현장 행보에 대한 소회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도 덧붙였다.
○ 핵심 가치로 ‘인재’와 ‘기술’ 제시
이 회장은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 인재와 기술을 꼽았다. 그는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 최고의 기술은 훌륭한 인재들이 만들어 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별과 국적을 떠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영입, 양성할 것과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글로벌 인재 영입과 인재 양성 생태계 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는 17일 국제기능올림픽 폐회식에 13년 만에 참석해 선수단을 직접 격려했다. 2006년 상무 시절 일본의 핵심 부품 공정 인력들이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 출신이라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핵심 인재 영입을 약속한 것도 그런 철학에서 빚어진 행보다. 이 회장은 당시 회견 직후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석학인 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영입했다. 지난해 말에는 5년 만의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하며 임원 직급 단계를 축소하고 직원들의 경력 개발 기회를 확대했다.
○ “더불어 성장” “인류 난제에 기여” 메시지도
취임 일성에는 삼성과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도 담겼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오랜 사법 리스크를 겪고 10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오른 이 회장은 “우리 삼성은 사회와 함께해야 한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이 회장은 게시글에서 “고객과 주주, 협력회사,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며 “나아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0년 12월 ‘승어부(勝於父)’ 선언을 통해 “크고 강한 기업을 넘어 모든 국민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밝힌 것의 연장선이다.
삼성은 청년들의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아카데미(SSAFY),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 드림클래스,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스마트공장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8월에는 게이츠재단과 협력해 3년간 개발해온 저개발국가용 위생 화장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