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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말라붙자… SK-롯데 등 대기업까지 ‘신보 보증’ 문 두드려

입력 | 2022-10-28 03:00:00

[자금시장 경색]
신보 보증도 안 통한다 ‘AAA급 증권’ 다 못팔아
‘레고랜드發 자금 경색’ 장기화
신보, 中企 담보증권 5432억 발행, 안전성 최고인데도 1200억 안팔려
중견-중소기업 자금난 악화 우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후폭풍이 장기화되고 있다. 공공기관들의 AAA급 최우량 공사채들이 잇달아 발행에 실패하는 가운데 신용보증기금이 지급 보증하는 중소기업 회사채 담보 증권도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신보의 도움으로 어렵게나마 자금 조달을 해온 중견·중소기업의 ‘돈맥경화’가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발행된 신보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5432억 원 중 약 1200억 원이 투자자를 찾지 못해 미매각됐다. P-CBO는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아 신보의 보증을 거쳐 발행하는 자산유동화증권이다. 자체 신용으로는 시장에서 직접 자금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공공기관인 신보가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번 P-CBO 발행에는 중견기업 18개사, 중소기업 321개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P-CBO는 요즘처럼 시장의 돈줄이 막혀 있을 때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의 생명줄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금리가 오르고 은행 대출이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 기업들로서는 고정금리로 장기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신보 등이 보증하는 P-CBO는 지난해 5조2312억 원에 이어 올해도 4조4000억 원 이상이 발행됐다. 중소기업 회사채이긴 하지만 신보 보증으로 안전성이 AAA급의 최고 수준으로 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투자 물량을 채우지 못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에 미매각이 발생하면서 미달된 물량은 이번 P-CBO 발행에 참여한 증권사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전력채권 등 공사채 발행이 무산되면 해당 공공기관들에만 피해가 가지만 P-CBO에 문제가 생기면 여기에 참여한 중소기업들에 여파가 번진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적절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P-CBO의 발행 실패가 이어져 전체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보도 최근 미매각 가능성을 우려해 자금난이 심각한 일부 건설사 등의 P-CBO 참여를 사전에 막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보 보증도 안 먹힌다


‘돈맥경화’ 산업계 전체로 확산
단기CP 금리 4.55% 올초의 3배
캐피털업계, PF 위험률 84% 최고
자금 조달 막혀 ‘부실 폭탄’ 우려







기업들의 자금난이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신보의 문을 두드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와 롯데, 효성그룹 계열사들은 올 8∼10월 신보가 보증한 P-CBO로 자금을 마련했다. 현금 확보가 수월했던 대기업마저 신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자금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시장의 자금 경색이 심해지면서 한전과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공기업들은 잇달아 채권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고, 이들의 발행 금리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6% 안팎까지 올랐다. 장기 채권 발행에 실패한 기업들이 단기자금 시장에 몰리는 현상도 연일 계속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27일 전날보다 0.04%포인트 오른 4.55%에 달했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1.55%에 그쳤지만 이후 세 배 수준으로 폭등했다. AA― 등급 회사채 3년물 금리도 5.620%로 전날보다 0.067%포인트 올랐다.
○ 캐피털사, PF 부실의 가장 약한 고리로 떠올라
자금시장 경색으로 수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가장 빠르게 늘려온 캐피털사들도 금융권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받고 있다. PF 부실 위험도가 금융업계에서 가장 높은 데다 최근 자금 조달까지 막혀 영세 업체가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캐피털업계의 자기자본 대비 PF 대출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비율은 84.4%에 이른다. 저축은행(79.2%) 보험사(53.6%) 증권사(38.7%) 은행(12.9%) 등을 크게 웃돈다. 2013년 말 45.4% 수준이던 캐피털사의 위험노출액 비율은 매년 가파르게 뛰었다.

이는 자동차 할부, 리스 등 자동차금융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캐피털사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수익성이 높은 부동산 PF 대출을 대폭 늘린 탓이다. 2013년 말 2조 원대에 불과하던 캐피털업계 PF 대출 잔액은 올 6월 말 24조8132억 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캐피털사들은 개발사업 인허가 이전 단계의 ‘브리지론’과 상업시설 대출 비중이 높아 리스크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PF에서 들어온 돈으로 브리지론을 상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개발사업이 잇달아 지연되면서 브리지론 건전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또 수신 기능이 없는 캐피털사는 주로 채권을 찍어 자금을 조달하는데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기업어음(CP) 등의 발행마저 막혔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7일까지 카드·캐피털채 순발행액은 ―2조7423억 원이다. 채권 발행액보다 상환액이 2조 원 이상 많았다는 뜻이다. 여전채 AA+등급 3년물 금리는 26일 5.926%로 연초보다 3.5%포인트 이상 뛰었다.

국내 자금줄이 막히자 해외에서 돈을 조달하는 곳도 생겼다. 업계 1위인 현대캐피탈은 26일 일본에서 0.98∼1.21%의 금리로 200억 엔(약 1930억 원) 규모의 엔화 표시 채권(사무라이 본드)을 발행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최근 국내 채권시장 조달 금리가 급격히 올라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 주목했다”고 했다.

PF발 위기에 캐피털업계가 먼저 쓰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25일 여전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유동성 현황 등을 점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캐피털사는 신용도가 낮은 곳이 많아 모니터링을 더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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