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하는 정신/한은형 지음/312쪽·1만5000원·작가정신
“서핑할 줄 알아요? 서핑할 줄 알겠네.”
주인공인 ‘나’에게 이런 말들은 이제 대수롭지도 않다. 미국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하지만 난 서핑을 해본 적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랬다.
서울에서 글로벌 기업을 다니는 내게 어느 날 변호사가 연락했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며 강원 양양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유산으로 남겼단다. 팔아치울 생각으로 간 아파트 앞엔 넓디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서핑의 성지였다.
일단 나라는 인물이 주는 먹먹함부터 독특하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사는 여성이라면 있을 법한 ‘비련의 여주인공’ 냄새는 없다. 그렇다고 캔디처럼 생기가 넘치지도, 똑순이처럼 야무지지도 않다. 지하철에서 쓱 지나쳐 가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거울에 비친 우리네 모습처럼. 하지만 그 내면엔 어딘가로 외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아파요”라고.
세계에서 제일 서핑하기 좋은 섬에서도 서핑하지 않았던 나는, 겨울철 검은 서핑슈트를 입어야 하는 동해안에서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르지만 뭔 상관인가. 어쩌면 내겐, 꼭 서핑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자기를 다독일 뭔가를 만난다면 타인이 어떻게 볼지는 딱히 중요치 않으니. 그럼 이제, 우리도 우리만의 서핑보드를 찾아야 할 때다. 거기에 바다가 있는 한.
“파도는 한 번 더 밀려올 것이고, 이제 내가 타야 할 타이밍이었다. 파도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희미하지만 저 물결은 파도였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