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생분해 기술 개발 ‘리플라’… 재질별 분해능력 다른 미생물 이용 특정 종류 플라스틱만 남기는 기술… 순도 1.65%만 높여도 값 1.5배로 서대표, 고교때 이미 창업 아이디어… 미생물 대량증식 환경 등에 노하우 분해 속도 점차 높여 내년엔 상업화… “플라스틱 재생 세계적 기업 되겠다”
서동은 리플라 대표이사가 플라스틱의 순도를 1.65%만 더 높여도 플라스틱을 1.5배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힘든 1.65% 순도 높이기를 리플라는 미생물을 이용해 시도하고 있다. 수원=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생수 병을 버리려고 할 때 플라스틱 재활용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시대다. 상표가 있는 라벨을 따로 떼어내고, 투명한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병만 모으는 통에 담아 버릴 것이 권장된다.
플라스틱은 폴리프로필렌(PP)이나 폴리에틸렌(PE), 폴리스티렌(PS) 등 여러 종류인데, 재활용이 제대로 되려면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생수 상표가 있는 라벨도 PP나 PS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의 일종이다. 꼼꼼한 사람은 병뚜껑(PS 재질)은 물론이고 뚜껑에서 분리된 후 병목에 남은 고리까지 떼어내서 버린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사회적 불편과 고통이 작지 않은 일이다. 생수 병은 그나마 분리가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구성됐지만 칫솔이나 분무기 등은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밀착돼 있어 분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제대로 분리하는 기술이 없어서 소각되거나 묻히는 플라스틱도 적지 않다. 리플라(대표이사 서동은)는 미생물을 활용해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말끔하게 분리해 폐플라스틱의 순도를 높이는 스타트업이다.
○플라스틱을 다 없애지 않고 ‘잘’ 남기기
친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은 없애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리플라의 서동은 대표이사(24)는 관점을 달리했다. 플라스틱과 결별할 수 없다면 ‘플라스틱을 잘 남겨야 한다’고 봤다. 순수하게 특정 플라스틱을 남길 수 있다면 재활용률을 그만큼 높일 수 있어 환경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리플라는 우선 PP만 남기는 방식으로 상업화를 시도하고 있다. PP는 플라스틱 중 질량이 가장 가볍고 내구성이 강해 많이 쓰이는 종류다. 고온에도 변형되거나 호르몬 배출이 거의 없어 배달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많이 쓰이고, 테이크아웃 커피 뚜껑이나 요구르트 병의 재료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들은 수거한 플라스틱을 먼저 수작업으로 선별한다. 그 뒤 근적외선과 비중 차이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선별해 순도를 높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비슷한 비중을 가졌거나 붙어 있는 플라스틱들을 분리하는 것은 힘들어 순도를 높이는 데 애로가 많다. 서 대표는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플라스틱을 변형하는 것과 달리 플라스틱 상태로 분리하는 이런 물질적 선별이 가장 효율적인데, 분리에 어려움이 많아 세계적으로 물질적 재활용 비율은 22%에 불과하고 한국은 13%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때 창업 아이템 발견
서 대표는 경기 용인 백암고에 다니던 2016년 재활용 산업을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주제로 한 전국과학탐구토론대회에 나갔다. 구체적인 연구주제를 찾다가 2015년 9월 미국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인 웨이민 위(weimin Wu) 박사가 쓴 스티로폼(발포 PS)을 먹는 밀웜 논문을 봤다. 밀웜 장내에 있는 미생물이 PS를 분해할 수 있다면 다른 여러 플라스틱의 분해도 가능할 것으로 봤다. 밀웜의 장내에서 미생물을 직접 찾아내기도 했다.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서 대표는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꿈꿨다. 당시 시장 조사를 위해 만났던 재활용업체 사장님들이 순도를 기존 98%에서 99.65% 이상으로 조금만 올려도 플라스틱을 훨씬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이후 창업 인재 특기자로 UNIST에 진학해 생명공학과 벤처경영을 전공했고, 2019년 법인을 설립했다. 회사 자본금 5000만 원은 이 아이디어로 여러 창업 경진대회에서 나가 받은 상금을 모아 마련했다. 창업 이후 연구를 거듭해 지금은 어떤 조건에서 플라스틱을 가장 잘 분해하는지 노하우를 쌓고 있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박나라 최고운영책임자(COO·24)는 “미생물 주변에 일반적인 먹이가 많으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를 내뿜지 않는다”며 “미생물을 굶기는 등 적절하게 척박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 노하우”라고 했다.
○미생물 대량 증식하는 단계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리플라의 연구소 내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여러 개 섞어 분해 속도를 높이는 연구가 한창이다. 수원=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리플라 앞에는 미생물을 대량으로 증식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실험실의 시험 단계인 수 kg을 넘어서 수 t 분량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 리플라는 미생물 배양기를 늘려 내년 말이면 바이오탱크 시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탱크는 지름 15m 정도 되는 긴 파이프를 50~100평 정도 되는 공간에 설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서 대표는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먹는다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미생물이 분비하는 효소가 플라스틱에 붙어 플라스틱을 분해 한 후 미생물이 흡수하는 것”이라며 “여러 균주를 혼합해 분해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어 내년 상업화 단계에서는 시간이 더 단축될 것”이라고 했다. 분해 속도가 높아지면 바이오탱크의 크기도 그만큼 줄일 수 있어 경제성이 커진다.
특정 플라스틱만 효율적으로 분해해 없애는 기술로 농촌의 폐비닐을 처리하는 바이오탱크를 설치하는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박 COO는 “잡초 방지용으로 바닥에 깔아 사용하는검은색 비닐은 대부분 LDPE로 만들어지는데, 햇볕에 부식되고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재활용이 힘들다”며 “지금은 땅에 몰래 묻어 버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LDPE를 잘 분해하는 미생물 바이오탱크로 친환경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커지는 대기업의 재생 플라스틱 수요
리플라에 따르면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의 규모는 50조 원에 달한다. 국내에는 연매출 3000억 원 이상인 곳 40곳을 포함해 4500여 곳이 있다. 플라스틱의 순도가 기존 98%에서 99.65% 이상으로 올라가면 판매 가격은 납품처에 따라 1.5배 가량 올라갈 수 있다. 순도를 1.65%만 높여도 판매가는 1.5배가 되는 셈이다. 하루 30t을 처리하는 업체라면 연 매출액이 37억5000만 원가량 더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다 기타 플라스틱을 미생물이 분해하기 때문에 기존에 매립하거나 소각하던 비용 연 8억5000만 원가량도 아낄 수 있어 총 46억 원의 이득이 발생한다는 게 리플라의 추산이다.세계적으로 고품질 재생수지에 대한 대기업들의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볼보는 2025년부터 볼보 차량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중 최소 25%는 재활용 소재를 적용할 계획이고, 포드는 재생 플라스틱만을 사용한 차량을 제작한다는 장기 목표까지 갖고 있다. 국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LG전자의 재생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도 근래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서 대표는 “미생물을 활용해 노트북컴퓨터나 자동차 내장재 등에 쓰일 수 있는 고순도 플라스틱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재활용 공장들을 돕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고 싶다”고 했다.
수원=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