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원하는 것부터 대화 시작” 과거 ‘군축협상 일축’ 기조서 변화 핵보고서엔 “北 핵 쓰면 정권 종말” 北, 2주만에 다시 탄도미사일 도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27일(현지 시간)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군축 (협상이)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조건 없는 대화’에 응하면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핵무기를 감축하는 대신 한미 연합훈련 등을 축소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군축 협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보니 젱킨스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사진)은 이날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대담에서 이같이 말하며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전화기를 들고 ‘군축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면 ‘안 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북한이 원하는 군축이) 무엇인지 대화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핵 군축 협상에 대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가능성을 일축해 왔다. 또 미국이 북한과 핵 군축 협정에 나선다면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리처드 하스 미 싱크탱크 외교협회(CFR) 회장이 19일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에 군축 협상 제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는 등 군축 협상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실제 젱킨스 차관은 27일 “전통적 군축 협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감소(risk reduction)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다”고 밝혀 핵무기 감축 보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 태세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북한은 2주 만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강원 통천 일대에서 이날 오전 11시 59분부터 낮 12시 18분까지 쏴 올린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2발은 고도 24km로 약 230km를 날아갔다.
바이든 정부 첫 ‘북핵 군축론’… “김정은 핵쓰면 정권 종말” 경고도
美 “北과 군축협상 가능”
美 일각 “비핵화 실패” 군축 거론… 군사훈련 중단 가능성도 제기
美, 국방전략-핵태세보고서… 中-러 이어 北 3번째 위협 평가
“中 대만에 핵공격 할수도” 지적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27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방부에서 국가국방전략(NDS) 핵태세보고서(NPR)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 “北과 군축, 위험 감소 모두 논의 가능”
보니 젱킨스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은 이날 미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대담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군축과 군사적 충돌 위험 감축이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군축은 언제나 옵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젱킨스 차관은 군축의 의미에 대해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군축의 목적과 의도는 투명성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도 포괄적인 군축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도 군축이 뭔지 (북한과) 다른 의견이 있었다”고 말해 군축 논의에는 핵무기가 포함돼야 한다는 뜻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두 국가가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군축뿐만 아니라 위험 감소 등 전통적 군축 협정으로 이어지는 군축의 모든 다른 요소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군축 협정에 포함되는 군사훈련 중단을 비롯한 적대 행위 중지 등도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유엔사령부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 중-러 한반도 개입 우려에 美 “억지력 딜레마”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국가국방전략(NDS)과 핵태세보고서(NPR)를 통해 “핵무기를 사용하면 김정은 정권에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선제 핵 공격까지 위협하는 북한이 대화 대신 군사행동을 선택하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반격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바이든 행정부는 NDS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북핵 위협을 언급하며 “북한은 중국 러시아 같은 수준의 경쟁자는 아니지만 미국과 동맹국에 억제 딜레마를 제기한다”며 “한반도 위기는 다른 핵보유국의 개입과 더 광범위한 분쟁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한반도 내 군사적 충돌 상황 시 중국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 때문에 핵우산 등으로 반격하는 것을 주저하는 딜레마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확장 억지 강화 및 한국 일본 호주와의 정보 공유를 강조하며 “정기적으로 고위급 회담을 여는 것은 물론이고 위기 대응 협의를 개선하기 위한 옵션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핵우산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과의 고위급 협의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지도부가 핵 강압과 제한적 핵무기 선제 사용을 비롯해 목표 달성을 위한 더 넓은 범위의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며 대만 통일을 위한 선제 핵 공격 가능성을 지적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