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충북 괴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주말 아침 전 국민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27분33초와 49초 괴산군 북동쪽 11㎞ 지역(북위 36.88, 동경 127.88, 장연면 조곡리)에서 규모 3.5와 4.1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2분 뒤에는 괴산군 북동쪽 10㎞와 12㎞ 지역에서도 규모 2.2와 2.9의 지진이 연속됐다. 최대 진도는 Ⅴ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진동을 느끼는 정도다.
체감 신고는 이날 오전 11시 기준 168건(충북 68건, 경기 42건, 강원 21건, 서울 10건, 경북 10건, 충남 6건, 대전 4건, 대구 2건, 경남·부산·인천·광주·세종 각 1건)이 있었다.
이번 지진은 올해 들어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1978년 계기관측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규모 기준으로는 38위에 해당한다.
충북에서는 조선시대 100여 차례 지진이 관찰됐다. 괴산에서만 20여 회 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상청이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에 따르면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에 충북지역에서는 1025년(고려 현종 16) 7월7일(이하 음력) ‘청주 등지에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보인다.
태종 16년(1416) 4월17일 자 기사를 보면, 경상도 안동·문경 등과 함께 충청도 충주·청풍(제천)·괴산·단양·연풍(괴산)·음성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땅이 크게 진동하거나 집이 크게(모두·마구) 흔들리는 등’은 진도 Ⅴ로 평가했다. 29일 괴산군 장연면에서 발생한 지진과 같은 진동 세기다.
세종 24년(1442) 10월 23일 자와 단종 원년(1452) 10월26일 자 기사에 나온 지진이 진도 Ⅴ로 추정했다.
심지어 ‘큰 길이 찢어지고 갈라지거나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진도 Ⅷ의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지진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한 기록도 있다.
선조 27년(1594) 6월 3일 자 기사는 ‘충청도에 지진이 있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했는데, 소리가 벼락 치듯 했고, 지상의 물건이 흔들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처음엔 하늘이 무너지는가 했는데, 나중엔 땅이 꺼지는 것 같았고 진동하는 힘이 갈수록 더욱 대단했다’고 했다.
지진 등 재해가 발생하면 나라에서는 특별히 제사를 지내 백성들을 위로해 동요하지 않도록 했다. 이를 해괴제(解怪祭)라고 했다.
세조 4년(1458) 9월 13일 자 기사에는 ‘충청도 괴산·음성·청안·충주·연풍 등의 고을에 지진이 있었으므로 향과 축문을 내려 해괴제를 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주=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