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주요 자금 조달 창구 PF대출 얼어붙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PF 부실 우려
5월 5일 강원 춘천시에 개장한 글로벌 테마파크 레고랜드. [뉴스1]
국내 부동산개발업계를 대표하는 업체의 A 대표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으로 건설업계에 ‘돈맥경화’가 심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돈맥경화란 피가 몸속에서 제대로 순환하지 않는 동맥경화에 빗댄 표현으로, 돈이 시중에 제대로 유통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실제로 채권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건설사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수요가 급감하고, 이로 인해 만기어음을 연장(롤오버)하지 못해 애를 태우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특히 자금 사정이 빠듯한 중소 건설업체와 지역 건설업체는 부도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비수도권 지역 한 중견 건설업체가 9월 말 1차 부도를 냈다. 유예 기간은 이달 말까지이지만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종 부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그룹 계열 대형 건설사도 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열사로부터 돈을 빌려오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6개월여 만에 공사 재개에 들어간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조합도 사업비 상환 등을 위해 발행한 8250억 원 규모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의 차환발행(기존 발행 채권의 원금을 갚기 위해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것)에 실패했다. 건설업체들이 모두 타 죽을 판이라는 말이 엄살이 아닌 셈이다.
사태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레고랜드 조성 공사에서 상수도와 주변 도로 개발을 담당하던 ‘중도개발공사(GJC)’가 사업비 조달을 위해 2020년 특수목적회사(SPC) ‘아이원제일차’를 세우고 2050억 원의 자산담보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이 어음에 대한 지급보증을 강원도가 맡았다. 어음의 담보는 ‘대출채권’이었다. GJC가 아이원제일차로부터 2050억 원을 빌려가면서 발행한 것이다. 어음 만기는 올해 9월 29일로 정해졌다. 그런데 만기일이 다가오는데도 GJC가 어음을 상환하기 어려워지자, 지급보증을 섰던 강원도가 발을 뺐다. 7월 취임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돈을 갚는 대신 만기 하루 전인 9월 28일 법원에 GJC에 대한 회생신청을 제출한 것이다.
이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일단 법원 회생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려 투자금 회수가 더딘 데다, GJC 회생을 위한 자산매각을 통해 투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원도 측은 GJC의 자산을 모두 매각하더라도 412억 원은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을 철회한 사실은 직격탄이 됐다. 그동안 지방채나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보증을 선 공기업 어음은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디폴트(채무불이행)되지 않는 국채와 동일한 신용도를 인정받았다. 레고랜드 어음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강원도가 보증을 섰기에 신용평가사들은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하지만 지급불능이 우려되자 신용평가사들이 해당 어음의 신용등급을 위험등급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0월 5일 아이원제일차와 해당 어음은 최종 부도 처리됐다.
공기업 어음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파장 일파만파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으로 만기어음을 연장하지 못해 애태우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GETTYIMAGES]
부동산 PF에서 ‘브리지론(Bridge Loan)’이 건설업계 부실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적잖다. 브리지론은 개발 사업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시행업체들이 본 사업에 대한 PF를 일으키기 전 빌리는 자금이다. 대개 토지대금이나 건설공사 착수 직전까지 필요한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된다. 그런데 현재 브리지론 금리가 치솟으면서 본 PF로 넘어가는 일이 사실상 막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800여 곳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분양시장 침체가 두드러진 대구나 경북, 세종 등 지방 사업장에서는 브리지론 이자가 지난해 10% 수준에서 최근에는 30% 이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주택 경기가 얼어붙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 미분양으로 사업자금이 묶일 것을 두려워한 전주(錢主)들이 소극적 행보로 돌아선 것이다.
부동산시장 연착륙 위한 과감한 정부 대책 주문
문제는 자금경색에 따른 건설업계 부실이 금융기관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까지 지속된 부동산 경기 호황에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가 적용된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PF 취급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를 받아온 은행권의 경우 부동산 PF 취급 규모의 증가폭이 크지 않았다. 반면 저금리 기조에서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금융기관들은 대체수익원으로서 부동산 PF대출을 크게 확대해왔다.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PF대출이 부실화할 경우 대출 취급 금융기관들의 직접적인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뿐 아니라, 부동산 PF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증권과 채무보증 등 파생 금융 상품의 동반 부실을 초래해 자본시장 전반에 적잖은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은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한 가계 부채 문제를 고려하면 부동산 PF대출 부실이 부동산 가격 하락과 그에 따른 가계 부실 문제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부에 “△부동산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과감하고 신속한 규제 완화 △사업장별 대출 부실 가능성 진단과 선별적 금융 지원 방안 수립 △부실화된 자산의 조기 인수와 처리를 위한 기금 조성 및 활용 같은 선제적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도 사태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10월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청약 당첨자 기존 주택 처분 기한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12월 시행) △중도금 대출보증 대상 9억 원 이하에서 12억 원 이하 주택으로 확대(11월 시행) △투기과열지구 및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지역 추가 해제(11월 시행) 등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2호에 실렸습니다〉
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