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유전학자가 본 고대인 유전체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다. 이들은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원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궁금증은 여태 풀리지 않은 게 부지기수다. 왜 다른 종은 모두 절멸했는데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은 서로 적대적이었을까, 때론 협력 관계였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고인류학이다. 고인류의 화석과 유물을 바탕으로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가 쉽지 않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뼈를 외부적으로 관찰한다거나 석기 등을 연구하는 방식으로는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웨덴 출신 진화유전학자 스반테 페보 박사의 연구로 현대인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2% 안팎으로 섞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진화유전학의 발전으로 네안데르탈인뿐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고인류들에 대한 유전체 해독이 가능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독일 메트만의 네안데르탈박물관에서 한 어린이가 전시 중인 네안데르탈인 모형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사진 출처 독일 네안데르탈박물관 홈페이지
1983년 이스라엘 케바라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화석. 페보 박사는 이런 뼈의 성분을 분석해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현대인에게 전승됐다는 것을 밝혀냈다. 유튜브 캡처
이런 노력 끝에 그는 1997년 세계 최초로 멸종한 인류의 유전자 정보를 밝히는 데 성공한다. 4만 년 된 네안데르탈인의 뼛조각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낸 것. 이렇게 새로운 분야의 토대를 착실히 다진 끝에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도 세계 최초로 해독했다. 특히 페보 박사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인류의 유전자 안에 약 4만 년 전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2% 안팎으로 섞여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한반도 등에 산 적이 없다. 우리나라처럼 네안데르탈인이 산 적 없는 지역의 사람들은 어떻게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갖게 되었을까? 해답은 이동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나타나 생존했고, 약 6만 년 전 중동으로 이동한 이후 곳곳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약 40만∼4만 년 전까지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수천 년 동안 중동 등에서 공존하면서 함께 자손을 낳은 것. 그런 자손들이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현대인은 이들의 후손이며, 네안데르탈인이 직접 산 적이 없는 곳에서 사는 현대인들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갖고 있게 된 이유다.
네안데르탈인이 물려준 염기 서열이 우리 몸 안에는 무려 6000만 개나 있다. 이 유전자 조각들은 실제 우리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12번 염색체상의 작은 부분에 네안데르탈인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조각을 갖고 있으면 코로나19 중증 위험을 낮춘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대표 사례다. 피부색이나 수면 패턴, 그리고 음주, 흡연, 기분장애, 통증 등 다양한 형질에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조각이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기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유산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유전적 질환의 비밀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연구를 통해 밝혀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또한 페보 박사의 연구를 통해 중요한 돌연변이가 나타난 후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 선택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우유와 유제품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낙농 문화권 유럽에서 젖당분해효소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분비되도록 하는 돌연변이가 기원전 3000년 이후부터 관찰된 점을 확인한 것이 대표 사례이다. 고DNA 연구가 인류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가축과 작물, 특히 매머드나 땅늘보 같은 멸종 종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