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부터 함께 하던 피크고슬라어, 안네 가족 다락방 은신하며 이별 수용소서 재회했으나 안네는 숨져 종전후 의무감에 나치 만행 알려… 둘의 사연 영화 ‘내 친구…’로 제작
하나 피크고슬라어(왼쪽)와 안네 프랑크가 1937년 어느 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래 박스 안에서 놀던 모습. 안네 프랑크 하우스 홈페이지 캡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를 피해 숨어 살며 쓴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 프랑크의 절친한 친구인 하나 피크고슬라어가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28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안네의 일기에 절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하나(‘하넬리’라고도 불림)의 별세 소식을 듣게 돼 슬프다”고 밝혔다. 피크고슬라어의 사망 일시와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피크고슬라어는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안네의 이웃집에 살았다. 피크고슬라어가 안네보다 한 살 많았다. 둘은 유치원과 학교를 함께 다니고 서로의 집을 자주 오가는 친구가 됐다. 피크고슬라어는 생전에 “우리 어머니는 안네를 설명할 때 ‘신은 모든 걸 아는데, 안네는 신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독일이 1940년 중립국이던 네덜란드를 침공하고 1942년 안네 가족이 홀로코스트를 피해 다락방으로 은신하면서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됐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건 1945년 2월 독일 베르겐벨젠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였다. 안네는 1944년 누군가의 밀고로 체포돼 이곳에 와 하나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다른 구역에 수감돼 가끔씩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안부를 물었다. 이 수용소에서 언니를 잃은 안네는 당시 눈물을 흘리며 “내겐 아무도 없다”며 슬퍼했다고 피크고슬라어는 생전에 회상했다.
안네는 그해 3월 발진티푸스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연합군이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를 해방시키며 피크고슬라어는 1947년 이스라엘로 떠나 간호사가 됐다. 피크고슬라어는 “나는 살아남았지만 안네는 그렇지 못했다”며 안네의 마지막 일기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평생 나치의 만행을 알렸다고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전했다.
둘의 사연은 1997년 미국 작가 앨리슨 레슬리 골드가 소설로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은 지난해 ‘내 친구 안네 프랑크’란 영화로 개봉됐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