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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달라” 외침에 시민들이 심폐소생술… 4인 1조 환자 이송도

입력 | 2022-10-31 03:00:00

[이태원 핼러윈 참사] 긴박했던 시민구조 현장
환자수에 비해 구조인력 모자라 시민들 스스로 나서 구조에 동참
인근 클럽은 문 열어 대피 돕고 상점-점원도 장사 접고 구조 도와




“심폐소생술(CPR) 할 줄 아시는 분? 군대 다녀오신 분들요. 얼른 오세요.”

핼러윈을 앞둔 주말인 29일 오후 11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발생한 참사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CPR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서 도와 달라”며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곳곳이 의식을 잃은 사상자들이 쓰러져가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지만 시민들은 경찰, 구급대원과 함께 쓰러진 이들을 살리기 위한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사고 현장에서 구조를 도운 이규원 씨(21)는 3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제가 잠깐 본 것만 30여 명의 사람이 쓰러져 CPR를 받고 있었다”며 “나머지 시민들은 4명씩 조를 이뤄 피해자의 팔다리를 잡고 길가로 옮겼고, 저도 일행과 함께 이를 도왔다. 살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 “도와 달라” 절박한 외침에 나선 시민들

29일 오후 6:00 경 몰려드는 핼러윈 인파 핼러윈 주말을 맞아 29일 오후 6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거리가 인파로 가득한 모습. SNS 화면 캡처

사고 직후 현장에는 구급대원들이 희생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밀집해 있었다. 가까스로 경찰관과 구급대원들이 피해자들에게 접근했지만 쓰러진 수에 비해 구조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고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피해자들이 심폐소생술을 받는 동안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주무르고 물을 공급했다.

현장에서 구조를 도운 서모 씨(22)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비명이 계속 들렸지만 현장에 있던 경찰관이나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한 명씩 맡아 상태를 살피느라 여력이 없어 보였다”며 “저와 함께 온 일행이 도움을 요청하는 분을 따라가 쓰러져 있던 환자에게 정신없이 흉부 압박을 했다. 그런데 이미 (환자의) 배가 부풀고 동공이 풀린 모습이었다”고 돌이켰다.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근처 노점상에서 분장을 받던 A 씨(23)도 “CPR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란 외침을 듣고 다급하게 달려갔다. A 씨는 “현장 근처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환자에게 무작정 다가가 30분간 CPR를 했다”며 “제가 돌본 8명 중 2명은 맥박이 느껴지지 않아 사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흉부 압박을) 계속하다 보면 심장이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차마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 생면부지 시민들과 조 이뤄 환자 이송

오후 9:00 경 좁은 비탈길 빽빽 29일 오후 9시경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인파가 빽빽하게 모여 있다. SNS 화면 캡처

CPR를 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위급한 환자를 구급차까지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의식을 잃은 환자들을 옮길 ‘들것’을 기다릴 새도 없었다. 시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4명씩 조를 짜 땀이 흠뻑 젖을 때까지 환자들을 옮겼다.

총 15명의 시민을 구급차까지 이송한 B 씨(28)는 “성인 남성 4명이 달라붙어야 환자 1명을 간신히 옮길 수 있었다”며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환자 1명을 이송하는 데 1분이 넘게 소요됐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술집에서 일행 1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강모 씨(32)도 뉴스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 씨는 “좁은 골목에 방치된 환자들을 우선 대로변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 있던 다른 남성 2명과 조를 짜 환자를 이송했다”고 했다.
○ “환자 눕혀라” 인근 상인들도 구조 동참

오후 10:30 경 옴짝달싹 못하고 비명만 29일 오후 10시 반경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시민들이 겹겹이 깔리면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됐다. 경찰과 소방 구조대가 출동해 팔을 끌어당겼지만 워낙 인파가 많아 빼내기 쉽지 않았다. 일부는 선 채로 실신하기도 했다. SNS 화면 캡처

사고 현장 인근 상인과 상점 종업원들도 장사를 접고 피해자 구조를 도왔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있던 클럽은 문을 열고 시민들이 대피하도록 유도해 추가 희생을 막았다. 인파에 밀리던 시민들은 담벼락에 오르거나 가게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손을 뻗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50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홍모 씨(60)는 “밖으로 나가 보니 해밀톤호텔 방향에서 사람들이 환자를 들쳐 업고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본 가게 점원들과 손님들이 뛰어가 CPR를 하는 등 구조를 도왔다”고 했다. 당시 홍 씨의 가게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도 의식을 잃은 환자들이 누울 수 있도록 들여보내 주는 등 구조를 돕고 있었다.

홍 씨의 가게 점원들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2시까지 현장을 뛰어다니며 의식을 잃은 환자들을 살리려고 CPR를 계속했다. 일부 점원은 가게로 돌아와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며 울며 자책했다고 한다. 홍 씨는 “직원들을 다독이고 오전 6시가 돼서야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1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38)도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시민들을 가게로 들여 물과 음식을 권하며 진정시켰다. 이 씨는 “다들 숨이 가빠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고양=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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