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핼러윈 참사] 긴박했던 시민구조 현장 환자수에 비해 구조인력 모자라 시민들 스스로 나서 구조에 동참 인근 클럽은 문 열어 대피 돕고 상점-점원도 장사 접고 구조 도와
“심폐소생술(CPR) 할 줄 아시는 분? 군대 다녀오신 분들요. 얼른 오세요.”
핼러윈을 앞둔 주말인 29일 오후 11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발생한 참사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CPR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서 도와 달라”며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 “도와 달라” 절박한 외침에 나선 시민들
29일 오후 6:00 경 몰려드는 핼러윈 인파 핼러윈 주말을 맞아 29일 오후 6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거리가 인파로 가득한 모습. SNS 화면 캡처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근처 노점상에서 분장을 받던 A 씨(23)도 “CPR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느냐”란 외침을 듣고 다급하게 달려갔다. A 씨는 “현장 근처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환자에게 무작정 다가가 30분간 CPR를 했다”며 “제가 돌본 8명 중 2명은 맥박이 느껴지지 않아 사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흉부 압박을) 계속하다 보면 심장이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차마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 생면부지 시민들과 조 이뤄 환자 이송
오후 9:00 경 좁은 비탈길 빽빽 29일 오후 9시경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 인파가 빽빽하게 모여 있다. SNS 화면 캡처
총 15명의 시민을 구급차까지 이송한 B 씨(28)는 “성인 남성 4명이 달라붙어야 환자 1명을 간신히 옮길 수 있었다”며 “사고 현장에서 구급차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환자 1명을 이송하는 데 1분이 넘게 소요됐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술집에서 일행 1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강모 씨(32)도 뉴스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강 씨는 “좁은 골목에 방치된 환자들을 우선 대로변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에 있던 다른 남성 2명과 조를 짜 환자를 이송했다”고 했다.
○ “환자 눕혀라” 인근 상인들도 구조 동참
오후 10:30 경 옴짝달싹 못하고 비명만 29일 오후 10시 반경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시민들이 겹겹이 깔리면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됐다. 경찰과 소방 구조대가 출동해 팔을 끌어당겼지만 워낙 인파가 많아 빼내기 쉽지 않았다. 일부는 선 채로 실신하기도 했다. SNS 화면 캡처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있던 클럽은 문을 열고 시민들이 대피하도록 유도해 추가 희생을 막았다. 인파에 밀리던 시민들은 담벼락에 오르거나 가게로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 손을 뻗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홍 씨의 가게 점원들은 사고 다음 날인 30일 오전 2시까지 현장을 뛰어다니며 의식을 잃은 환자들을 살리려고 CPR를 계속했다. 일부 점원은 가게로 돌아와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며 울며 자책했다고 한다. 홍 씨는 “직원들을 다독이고 오전 6시가 돼서야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사고 현장에서 1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38)도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는 시민들을 가게로 들여 물과 음식을 권하며 진정시켰다. 이 씨는 “다들 숨이 가빠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울고 있었다”고 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고양=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