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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이태원 참사, 국민적 트라우마 우려…영상 유포 자제해야”

입력 | 2022-10-31 13:57:00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9일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 관련,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현장으로 출동했던 경찰과 소방대원, 뉴스를 지속적으로 접한 일반 시민들까지 국민적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31일 MBC ‘뉴스투데이’에 출연해 “살면서 이렇게 충격적인 현장을 접한 사람은 거의 없다”며 “생존자, 목격자 등에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문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교통사고같이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뒤 생길 수 있는데, 대개 이런 사건은 순간적”이라며 “그러나 이태원 참사는 몇 십분, 몇 시간 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뇌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상이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만으로도 PTSD에 준하는 증상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실제로 세월호 사건 이후에도 그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반복적으로 뉴스나 영상 등을 시청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장면이 떠오른다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호소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고 했다.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김 전문의는 “사건 이후 계속해서 악몽을 꾸거나, 당시 상황이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사람들 많은 곳을 피하게 되는 증상이 3일 이상 지속되면 급성 스트레스 장애, 한 달이 넘어서도 지속되면 PTSD로 본다”며 “지금 괜찮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건 이후 ‘국가 트라우마 센터’가 만들어졌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회복지원인력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조만간 재난회복지원 프로그램이 실행될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심리적으로 힘든 분들은 심리지원 핫라인(1577-0199)으로 연락하면 구체적인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 전문의는 “압도적인 사고를 경험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내가 좀 더 빨리 구했다면’ 이런 식으로 자기 비난을 하게 된다”며 “이런 것들이 우울증으로 이어져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이어 “트라우마 후에 나타나는 반응은 그 사람의 의지나 멘탈(정신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압도적인 상황에 대한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옆에서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 최대한 공감하면서 언제든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알리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끝으로 “주변인들이 다 같이 격려해도 부족할 판에 ‘그러게 거길 왜 갔느냐’는 식의 인터넷상 익명의 글은 자기 비난의 마음을 더욱 키우기 때문에 자정이 필요해 보인다”며 “사건 당시 영상이나 이미지를 계속해서 유포하는 것도 PTSD에서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소영 동아닷컴 기자 sykim4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