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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참사 3일전 ‘압사’ 경고에도 대비 안했다

입력 | 2022-11-01 03:00:00

[이태원 핼러윈 참사]
26일 이태원 상인-용산구와 회의… 상인측, 압사 사고 위험성 지적
일선경찰도 ‘안전사고 우려’ 보고… 용산구 27일 별도 긴급대책회의
핼러윈 인파 예상에도 무방비



믿을 수 없어…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대학생 정원우 씨(25)가 희생자 추모를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정 씨는 “이번 참사로 아는 분이 목숨을 잃었다”며 “서울 한복판에서 15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망자 155명을 낸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사흘 전 경찰과 용산구 관계자 등이 모인 간담회에서 압사 사고 발생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경찰과 용산구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사무실에서 경찰과 용산구, 이태원역, 상인단체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연합회) 등 관계자 10여 명이 모인 ‘4자 회의’가 열렸다. 2019년 이후 3년 만의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앞두고 공동 대책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용산경찰서는 112상황실장 형사과장 여성청소년과장 등이, 용산구는 자원순환과 직원 2명이, 이태원역에선 역장이 참석했다.

인파 쏠림을 우려한 안전 문제는 연합회 측이 제기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연합회 관계자는 3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회의 자리에서 ‘압사 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사고를 막으려면 거리에 있는 테이블 등을 치워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용산구 관계자도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이라 주변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회의에서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전 우려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 쓰레기 배출 등의 논의만 구체화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간담회 당시 연합회 측과 공동으로 불법촬영 방지, 마약류 단속 등에 대한 공동 캠페인을 논의했다”면서 “간담회 당시 안전성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선 경찰도 안전사고 우려를 담은 내부 보고를 사전에 올렸으나 서울경찰청 경비 운용계획에는 반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핼러윈을 며칠 앞두고 용산경찰서 정보과에서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경찰 내부 전산망에 등록했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용산구가 별도 개최한 긴급대책회의에서도 안전사고 관리 대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예년보다도 많은 인원이 이태원 일대에 운집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현장 안전관리 인력 배치 등 구체적인 대책은 사전에 어디에서도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1일 오후 11시 반까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인명피해가 사망자 155명, 중상자 30명, 경상자 122명 등 총 307명이라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사망자 155명 전원에 대한 신원 확인을 완료했다”고 했다.




경찰, 직무법상 이태원 보행 통제할 수 있었다


‘압사’ 경고 묵살한 경찰… 경찰, 현장 CCTV 보고도 대응 안해
“주최측 없는 행사, 매뉴얼 부재”… 대통령실 “국민 통제할 권한 없다”
전문가 “경찰직무법 명확히 적시… 위험 인지땐 합당한 조치 취해야”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참사 발생 조짐을 감지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사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U-용산통합관제센터’ 시스템은 차량과 인파로 가득 찬 이태원 일대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센터에는 경찰관도 파견돼 있다. 그러나 별다른 사전 조치는 없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실시간 현장을 보더라도 사고가 발생한 골목까지 비추진 않으며, 주로 교통 흐름 파악 용도로 활용된다”고 해명했다.
○ 주최자 없는 행사 경찰 개입은 월권?
정부 당국이 31일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서 경찰이 질서 유지를 위해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고 밝힌 것을 두고선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이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경찰은 집회나 시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다”면서 “주최 측의 요청이 있거나 주최 측의 안전관리계획상 필요한 경우엔 경찰이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 제도적으로 권한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권한이 없어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권한과 가능한 조치가 명확히 적시돼 있다고 지적한다. 직무집행법 2조(직무 범위)와 5조(위험발생의 방지)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 우려가 있을 경우 경고와 피난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적 권한이 없어서 조치를 하지 못했다는 해명은 직무집행법과 맞지 않는다”며 “사전 또는 현장에서 경찰이 위험을 인지했다면 당연히 합당한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적 받고도 매뉴얼 마련에 안 나서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주최 측이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매뉴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이 2015년 10월 대구가톨릭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받은 ‘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위한 경찰 개입 수준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다중 운집 행사의 유형을 포괄해 정리하고 안전관리계획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관리는 경찰의 단독 업무 수행이 아니라 유관기관의 역할 범위와 책임의 한계 등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연구 결과가 있었음에도 경찰, 정부가 구체적 매뉴얼 마련에 나서지 않았던 셈이다.
○ 안전요원 없이 방역·주차 단속만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도 사전 대책 마련이 부실했다. 지난달 27일 별도 개최한 긴급회의에선 특별방역, 거리 청결 문제, 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등이 집중 논의됐을 뿐 안전사고 관련 논의는 주요 시설물 점검에 그쳤던 것으로 파악됐다.

용산구에 따르면 구는 10월 27∼31일을 핼러윈 관련 ‘긴급 대책기간’으로 설정하고 대응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젊은층의 분위기가 핼러윈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지만 구청이 하루 현장 관리에 투입한 인원은 30여 명 선에 그쳤다. 하지만 이 인원마저도 방역, 불법 주정차 단속 인력이며 안전사고 관리 담당자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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