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막하는 연극 ‘틴에이지 딕’의 두 배우 하지성(왼쪽), 조우리. 하지성은 학생회장을 꿈꾸는 리처드 글로스터 역을, 조우리는 리처드의 절친한 친구 바버라 워킹엄 벅 역을 맡아 연기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연극사(史)적으로 가장 유명한 장애인 캐릭터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 3세다. 기형적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권력욕으로 채우려는 한 인간의 악행과 파멸을 다룬 해당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장르의 작품들로 변주돼왔다. 1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되는 연극 ‘틴에이지 딕’도 리처드 3세에서 출발했다.
‘틴에이지 딕’의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 마이크 루. 그는 희곡 서문에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와 그의 친구 바바라 벅 버킹엄 역에는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적었다. 장애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연기가 이 희곡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지성, 조우리 배우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하지성은 2010년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로 데뷔했으며, 조우리는 2015년부터 배우, 작가, 연출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왔다. 국립극장 제공
국내 초연에는 뇌성마비 장애인 리처드와 벅 역에 각각 뇌병변 장애인 배우 하지성(31), 조우리(39)가 발탁됐다. 하지성은 장애인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2010년)를 시작으로 ‘인정투쟁’ ‘천만 개의 도시’ 등에 출연한 배우다. 장애운동가 출신 조우리는 2015년부턴 배우, 작가, 연출가 등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학생회장을 꿈 꾸는 뇌성마비 장애인 리처드(오른쪽·하지성)와 그의 연인으로 나오는 앤 마거렛(김가린). 국립극장 제공
‘틴에이지 딕’은 현대 미국의 한 고등학교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리처드는 장애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만 마냥 참지만은 않는다. 복수를 위해 학생회장을 꿈꾸지만 고난을 견딘 약자가 성공한다는 식의 미담 서사는 아니다. 분노에 휩싸인 리처드는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심지어 자신의 장애까지 이용한다.
“리처드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친한 친구인 벅을 이용하고 배신까지 하죠. 자신의 경쟁자를 좋아하는 벅에게 ‘휠체어에 앉은 네가 어떻게 걔랑 사랑을 할 수 있냐’는 식의 차별 발언도 하게 돼요.”(조우리)
많은 작품에서 장애인은 고통을 감내하는 인물 혹은 선행의 수혜자로만 그려졌다. 하지만 ‘틴에이지 딕’은 장애인을 평범한 욕구와 욕망을 가진 인물로 내세워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과 선입견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내가 영웅이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란 리처드의 대사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고 사랑하고 싶잖아요. 리처드는 평범한 욕구마저도 품지 못해 결국 뒤틀린 악인이 되버린 거죠.”(하지성)
2018년 미국에서 초연된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마이크 루의 희곡 ‘틴에이지 딕’. 국내 초연은 신재훈 연출이 맡았다. 국립극장 제공
배우는 대사와 지문을 신체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은 몸을 사용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다. 조우리는 “목 밑으로는 못 움직이니까 표정과 대사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전달력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성도 “다른 배우들과 소통하면서 디테일한 감정의 리처드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극 후반,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리처드는 예상치 못한 혼란과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소중한 것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리처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최후의 순간 욕망과 우정, 사랑 앞에 선 리처드에게서 관객은 ‘진짜 소중한 건 무엇일까’란 고민에 빠지게 될 겁니다.”(조우리)
20일까지, 3만~4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