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경찰 및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한 남성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들마저 무사하지 못할 뻔 했어요.”
부산 금정구 한 장례식장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족 A 씨는 한 남성을 거론하며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컴퓨터 디자이너였던 A 씨의 딸(32)은 지난 달 29일 남동생(19)과 함께 서울 이태원을 찾았다. A 씨는 “최근 대학에 합격한 아들이 누나를 만나려고 서울을 찾은 것”이라며 “인파에 휩쓸린 딸은 결국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나마 아들 B 군을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건 한 남성 덕분이라고 했다. A 씨가 거론한 남성은 특수전사령부 대위 출신 현진영 씨(30)였다.
● “누나 못 구해 되레 미안”
현 씨는 1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달 29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이태원을 찾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전사에서 약 6년 복무 후 올 6월 대위로 전역한 그는 ‘응급구조사’ 자격을 취득한 상태였다.즉시 거리로 나온 현 씨는 오후 10시 15분경 성인 2, 3명 아래 깔려 힘겨워하는 B 군을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해 그를 빼냈다. 길거리에 누운 B 군이 의식을 잃자 어깨를 흔들고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게 했다. 현 씨는 “혼자 왔느냐”고 물었고 B 군은 “누나와 왔다”고 했다. 현 씨는 “인상착의 등을 물어 누나를 추가로 구조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고 돌이켰다.
현 씨는 이후에도 30일 새벽 4시까지 약 6시간 동안 소방대원 등을 도와가며 구조 활동을 했다. 현 씨는 “약 30명의 민간인들이 함께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처치를 도왔다”며 “핼러윈을 즐기러 왔던 간호사들도 하이힐을 벗고 응급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누나를 구하지 못해 유족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 사람 끌어올린 ‘난간의 의인들’
참사 당일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 난간에서 인명 구조에 동참한 ‘난간의 의인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배지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BJ(인터넷 방송인)는 참사 당일 이태원에서 방송을 하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다행히 난간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뻗어 가까스로 구조됐다. 이후 시민 2, 3명과 힘을 모아 추가로 시민 5, 6명을 난간으로 끌어올려 구조했다고 한다. 당시 촬영된 약 1시간 분량의 영상에는 그가 “한 명만 더”를 외치며 난간 밑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참사 당일 가게 문을 열고 공간을 만들어 구조에 동참한 사례도 있다. 목격자 전모 씨(25)는 1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골목이 완전히 사람으로 꽉 찼을 때 옆에 있던 작은 클럽에서 문을 열어줘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갔다”고 돌이켰다. 클럽 관계자는 “당시 사람들이 몰려 위기를 직감한 직원이 문을 열었다”며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최선을 다해 구조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구조 활동에 동참했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한국에 휴가를 왔던 미국인 의사 소피아 아키야트 씨(31)도 참사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