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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참사 이틀 뒤 시민단체-여론 등 동향파악… ‘정부 책임론’ 부각 우려 담겨

입력 | 2022-11-01 22:44:00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후 이틀 뒤인 지난달 31일 경찰청이 시민단체와 여론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정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문건에는 진보 성향의 시민 단체가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라는 내용과 정부 책임론이 부각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1일 SBS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이 작성한 ‘정책 참고 자료’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이번 참사 관련 ‘정부 부담 요인’ ‘주요 단체 등 반발 분위기’ ‘온라인 특이여론’ 등이 주제별로 담겨있다. 지난달 31일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건엔 ‘특별취급’이라는 글씨 아래 타 기관으로 전파나 복사를 할 수 없다고도 명시했다.

시민단체의 동향 관련 내용에선 “추모·애도에 초점을 두고 관망하는 분위기”라면서도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한 대형 이슈라며 내부적으로 대응 계획을 논의 중”이라는 보고 내용도 적혀있다. 또 진보성향 단체들이 전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와 현 상황을 비교하며 정부 성토 여론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고도 담겼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번 참사에서 여성 사망자가 많았던 점을 거론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정책으로 들고 나온 정부의 ‘반여성 정책’ 비판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도 적시됐다. 전국민중행동의 경우 이번 사건을 ‘제2의 세월호 참사’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나 1989년 영국의 축구장 참사 사례를 들며 정부가 끝까지 국민 보호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한다고도 적혔다.

보수단체 성향 시민단체인 자유통일당과 관련해선 “진보 시민단체들이 세월호 때처럼 여론몰이하고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경우 대응이 불가피한 만큼 대규모 집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담겼다. 사고 당일엔 “촛불집회 참석인원 중 다수가 이태원에 합류했을 것”이라며 촛불행동 측의 책임을 주장할 것이라는 일부 보수단체 활동가의 말도 포함됐다.

이번 참사 수습을 위한 보상금 지급 관련 “통상 대형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향후 보상 문제가 이슈화될 소지”라고도 적혔다. 또 세월호 사고 당시 유족이 받은 보상금을 언급하며 ‘서울시, 용산구, 정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주장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 내용도 담겨있다. ‘온라인 특이 여론’이라는 주제의 내용에는 ‘정부 책임론’ 관련 보도량이 9건에서 108건으로 대폭 증가했고, 일부 시사 프로그램들도 심층 보도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는 단순히 외부로 공개된 단체별 일정, 성명을 정리한 수준을 넘어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경찰이 직접 접촉하며 파악한 정황들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사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이 작성한 문건이 맞다”며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공공안전과 질서 유지에 관한 정보 수집을 하도록 돼 있고 구체적인 정책 정보를 해당 기관에 통보해 참고하도록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치적 내용이라든가 개인 사찰과 관련한 내용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문건의 내용은 다 ‘구글링 검색’하면 나오는 수준의 정보”라고 밝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