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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압사 위험” 사흘 전 경고도, 4시간 전 112신고도 다 묵살됐다

입력 | 2022-11-02 00:00:00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경찰 및 용산구와의 간담회에서 상인단체가 “압사 사고를 포함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고 한다. 같은 날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은 안전사고 위험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의 보고서도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고, 이는 경찰 내부망에 공유됐다. 하지만 경찰이나 구청은 이런 사전 경고들을 사실상 묵살했다.

참사 당일에도 여러 차례 위험을 알리는 징후가 있었지만 현장 대응은 허점투성이였다. 소방에 첫 신고가 접수되기 4시간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경 경찰에 첫 112 신고가 접수됐다. “해밀톤호텔 골목에 사람들이 오르내리는데 너무 불안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 인파가 너무 많은데 통제해 주셔야 할 것 같다” 등 구체적인 장소와 상황까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압사, 밀려서 넘어지고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거죠”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날 밤에만 압사라는 단어가 9번 언급되는 등 오후 6시 이후 79건의 112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무슨 일인지 경찰은 사고를 방지하기에 충분한 인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어제 “사고 발생 직전에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는데,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며 사과했다. 112 신고가 아니었더라도 현장 폐쇄회로(CC)TV를 통해 경찰이나 구청은 얼마든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과 구청이 협의해 좀 더 일찍 참사 현장을 통제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핼러윈 이벤트처럼 주최 측이 없는 행사의 안전 관리에 대한 제도적 정비를 하지 않고 장기간 방치한 것도 문제다.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경찰은 안전 사각지대로 불리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대규모 행사의 대응 매뉴얼에 대한 연구 용역을 외부 기관에 의뢰했다. 당시 보고서는 경찰이 다양한 행사에 개입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고, 유관 기관별 역할을 매뉴얼로 구체적으로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사고 발생 위험성을 알고도 7년 동안 제도 정비에 손을 놓고 있었다.

경찰은 뒤늦게 대규모 인원으로 특별수사본부와 특별감찰기구를 구성해 수사와 내부 감찰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길게는 참사 전 7년부터, 짧게는 4시간 전의 사전 경고가 번번이 무시된 경위와 현장 출동이 늦어진 이유 등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참사의 문제점이 정확히 파악돼야 제대로 된 재발 방지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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