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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재탄생한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입력 | 2022-11-02 03:00:00

연극 ‘틴에이지 딕’ 17∼20일 국내 초연
美 극작가 마이크 루 각색 작품… 희곡 서문에 “주인공은 장애인 배우”
뇌병변 장애 하지성-조우리 발탁… 장애인을 욕망의 인물로 내세워
사회의 선입견 신랄하게 꼬집어



‘틴에이지 딕’을 쓴 마이크 루가 리처드와 벅 역은 장애인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한 데 대해 배우 하지성(왼쪽), 조우리는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을 하면 디테일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 비장애인 배우가 각자 재능을 잘 살리길 바라며 한 말 같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연극사에서 가장 유명한 장애인 캐릭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처드 3세’의 리처드 3세다. 기형적 신체에서 비롯된 열등감을 권력욕으로 채우려는 한 인간의 악행과 파멸을 다룬 이 고전은 많은 장르로 변주돼 왔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7∼20일 국내 초연되는 연극 ‘틴에이지 딕’은 리처드 3세를 뇌성마비 고교생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틴에이지 딕’을 쓴 극작가 마이크 루는 희곡 서문에 “주인공 리처드 글로스터와 그의 친구 바버라 벅 버킹엄 역엔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적었다. 장애인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감정만이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리처드와 벅 역에 각각 뇌병변 장애인 배우 하지성(31), 조우리(39)가 발탁됐다. 하지성은 장애인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2010년)로 데뷔했다. 장애운동가 출신 조우리는 배우, 작가, 연출가로 활동해왔다.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리처드는 스스로를 장애인이라 여기기보단 ‘다른’ 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하죠. 학생회장이 되겠다는 리처드의 욕망은 거기에서 시작됩니다.”(하지성)

작품의 배경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 리처드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마냥 참진 않는다. 분노에 사로잡힌 리처드는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심지어 자신의 장애까지 이용한다.

“리처드는 가장 친한 친구인 벅을 이용하고 배신까지 하죠. 리처드가 끌어내리려는 학생회장 에디(김연수)를 좋아하는 벅에게 ‘휠체어에 앉은 네가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느냐’는 말까지 합니다.”(조우리)

많은 작품에서 장애인은 주로 고통을 감내하는 인물 혹은 선행의 수혜자로 그려졌다. 하지만 ‘틴에이지 딕’은 장애인을 욕구와 욕망을 가진 인물로 내세워 장애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내가 영웅이 아니란 걸 벌써 알고 있었잖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란 리처드의 대사가 있어요. 리처드는 평범한 욕구마저도 허용되지 않아 뒤틀린 악인이 돼버린 인물이에요.”(하지성)

배우는 희곡의 대사와 지문을 신체로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두 사람은 몸을 사용하는 데 자유롭지 않다. 조우리는 “목 밑으로는 못 움직이니까 표정과 대사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에 전달력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성도 “다른 배우들과 논의하며 디테일한 감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극 후반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리처드는 예상치 못한 혼란과 선택의 순간에 맞닥뜨린다. 소중한 걸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리처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욕망과 우정, 사랑 앞에 선 리처드와 함께 관객들은 ‘진짜 소중한 건 무엇일까’란 고민에 빠지게 될 거예요.”(조우리)

3만∼4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