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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몰린 ‘T자 골목’에 불법증축 건축물 6개

입력 | 2022-11-02 03:00:00

[이태원 핼러윈 참사]
계단 등 무단설치로 거리 좁아져
적발돼도 잠시 철거했다 다시 설치
이행강제금外 제재할 방법 없어




“이 골목은 불법 증축 백화점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1일 동아일보 취재팀과 함께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 골목을 살피던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축물대장, 평면도와 실제 건물을 대조한 뒤 이같이 말했다. 이 골목은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과 맞닿은 곳으로 참사 당시 불법 증축 때문에 대피가 어려워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안 전 교수가 가리킨 한 카페 건물은 내부 공간이 건축물대장에 표기된 경계 밖까지 콘크리트로 1.5m가량 확장돼 있었다. 맞은편 주점 건물은 대장에 표시된 경계 밖으로 1m가량 확장돼 있었는데 이곳에 철제 계단도 설치돼 있었다. 모두 불법 증축으로 구청에 적발된 것들이다.

원래 두 건물 사이의 거리는 8.5m는 돼야 하지만 불법 증축 탓에 실제로는 6m가량에 불과했다.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골목 폭이 2.5m가량 좁아진 것이다.

참사 당시 대피로로 사용됐던 이 거리에 있는 건물 14곳 중 6곳이 무단 증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결과 나머지 건물 8곳 중 6곳도 과거 무단 증축됐던 이력이 있었다.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허가 건축물’도 1곳 있었다. 안 전 교수는 “돌출한 철제 계단이나 난간, 영업공간을 넓히려고 설치한 천막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무단 증축돼 있다”며 “보행자 안전을 위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행강제금 내면 그만”… 길 막은 불법증축 10년째 시정 안해


전문가와 돌아본 이태원 참사 골목

건물 14곳중 6곳이나 무단증축
전문가 “불법증축 백화점 같아”… 좁아진 통행로, 결국 참사로 연결
1982년 이전 건물은 단속 제외… 지자체들 “강제철거 방법 없어”





동아일보 취재팀과 만난 인근 상인들은 이 일대 건물의 무단 증축이 이태원 상권 형성 이후 계속 이어져 왔다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영업 공간을 넓히기 위해 설치한 임시 구조물이 구청에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가 다시 설치하는 업주들이 적지 않다”며 “일부 업주들은 철거하는 시늉도 안 하고 ‘이행강제금을 물더라도 불법 증축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이득’이라며 배짱 영업을 한다”고 전했다.
○ 5차례 지적 받고도 10년 동안 시정 안 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건물 외벽에 불법 행사 부스를 설치해 도로를 막았던 해밀톤호텔 별관은 2013∼2017년 총 5차례 무단 증축 지적을 받고도 10년 가까이 시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밀톤호텔 별관은 1층 31m²가량을 경량철골과 투명 플라스틱 패널 등으로 불법 증축했다가 2013년 12월 처음 당국에 적발됐다. 이 건물은 2014년 11, 12월에도 점포 30m²와 옥상 창고 24m², 2층 영업장 78m²를 무단으로 넓혔다. 2017년에는 별관 1층의 무단 증축 면적이 31m²에서 51m²로 더 늘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 로드뷰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한 결과 이 건물은 외벽 밖으로 계속 확장하며 무단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해밀톤호텔 별관과 본관 사이 도로 폭이 좁아졌다. 참사 당일에는 이에 더해 불법 임시 부스가 설치됐고, 맞은편 본관 건물에 불법 증축된 테라스까지 더해져 원래 약 5m인 골목 폭이 약 3m로 좁아졌다. 이로 인해 참사 당시 대피로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 적발되면 철거하고 재설치 반복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의 다른 건물들도 무단으로 면적을 늘려 영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구청에 적발되면 잠시 철거했다 다시 증축하기를 반복해 온 것이다.

이 거리 내 한 주점 건물은 2015년 도로 앞에 파이프, 비닐 등을 이용해 천막을 증축했다가 구청에 적발됐다. 이 건물은 약 11개월 뒤 천막을 철거했다고 신고했지만 2020년 5월 다시 설치해 재차 위반 통보를 받았다. 건축물대장에 따르면 이 천막은 해가 지날수록 도로 방향으로 면적을 넓히다 올 9월 다시 구청으로부터 위반 통보를 받았다. 건물 6층 역시 무단 증축된 상태다.

다른 건물도 무단으로 외부 공간에 구조물을 세워 구청에 적발됐다. 이 건물주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키지 않았는데 인테리어 업자가 구조물을 세워 버렸다”며 “그렇다고 부수자니 애매해서 매년 5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내고 있다. 고의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지자체가 적발 못 한 위반 건축물도
무단 증축 상태지만 건축물대장에는 시정 조치된 것으로 기록된 곳도 있었다. 한 주점 건물은 2015년 건물 앞에 창틀과 유리를 덧대 공간을 넓혔다가 구청에 적발됐다. 이후 해당 건물에서 시정 조치를 해 올 9월 구청은 이 건물의 위반 건축물 표기를 해제했다. 하지만 점포가 바뀌면서 이 건물은 다시 철제 기둥과 유리로 온실 비슷하게 무단 증축된 상태다.

안형준 전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이행강제금을 물리긴 하지만 납부만 하면 그 이상의 별다른 제재가 없는 실정”이라며 “이태원뿐 아니라 홍익대 앞 등의 대형 상권에서도 흔하게 보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참사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에는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은 ‘미허가 건축물’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시건축사회 관계자는 “1982년 이전 지어진 건축물의 경우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라 ‘기존 무허가 건축물’로 분류돼 단속 유예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지자체 상당수가 이 같은 건물이 위험 요소라고 보고 개선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 관할 지자체 “제재 수단 마땅찮다”
지자체 실무자들은 불법 증축 건물에 대해 이행강제금 부과 외에는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별로 없다고 했다. 관련 대법원 판례가 있어 건축 규정을 위반했더라도 강제 철거는 어렵다는 것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이행강제금 부과 외에는 취할 수 있는 제재 조치가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이행강제금은 불법 증축물의 시가표준액, 위반 면적 등을 고려해 부과하지만 건물주가 증축으로 얻는 임대료 상승분 등 이익에 비해 적은 경우가 상당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5m가량 떨어진 해밀톤호텔 본관 역시 북측 주점 테라스 17.4m²가 불법 증축돼 지난해 5월 시정조치를 받았지만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해당 면적에 대해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은 1년 기준으로 400만∼500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불법 증축으로 통행로가 좁아지는 경우 보행자 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위반 건축물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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