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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 졸업생 3인방 “‘내가 가장 잘 하는 것’ 찾다보니 스타트업 세계로…”[스테파니]

입력 | 2022-11-02 11:00:00


안녕하세요! 동아일보에서 스타트업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김하경 기자입니다. 이번 스테파니에서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특별한 세 명의 인물을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김수지 쏘카 CIO,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 임수진 두나무앤파트너스 파트너인데요. 

임수진 두나무앤파트너스 파트너(왼쪽), 김수지 쏘카 CIO(가운데),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오른쪽)가 환하게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올해 8월 상장한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중고거래 플랫폼, 두나무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서 각각 일하고 있는 세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강원 ‘민족사관고(민사고) 출신 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민사고 출신이라고 했을 때 독자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엘리트 교육을 받은 똑똑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요. 왠지 이들이 걷고 있는 길도 전문직, 대기업 등 전형적으로 엘리트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밟는 코스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라니…!?’ 대중의 예상을 깨고 스타트업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세 명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민사고가 이들이 스타트업 DNA를 발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 오게 된 계기, 업계에 대한 생각 등 자유롭게 나눈 이야기를 인물별로 정리했습니다. 
●민사고 교육환경이 자기주도성·자립심 길러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최재화 대표
일반고에서는 보통 수능 준비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를 하는데, 민사고에서는 1학년 때 일반적인 교과서 커리큘럼에 따른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예컨대 교과서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몇 세기 철학자다’라고 나온다면,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었습니다. 평생 읽을 책을 고1때 거의 다 읽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졌습니다. 

▽김수지 CIO
자기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민사고 교육의 장점이었습니다. 저는 고교시절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에 미국 정치세계와 관련된 수업을 개설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이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훈련도 할 수 있었어요.

▽임수진 파트너
민사고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날씨에 상관없이 오전 6시에는 운동을 해야 했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한복을 (교복으로) 매일 입어야했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는 교과과정을 소화하는 것은 당연하구요. 지켜야하고 해야하는 것들이 명확히 있다보니 자가 조절, 자기 훈련 능력이 많이 생겼어요. 부모님도 옆에 안 계시니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생활력도 강해졌죠. 

제가 민사고를 다닐 때만 해도 외국 대학에 진학했던 사례가 별로 없어서 시행착오 과정을 겪어야 했어요. 어떤 학교에 지원할지,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할지 등 모든 것들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가야 했습니다. 한 학교에서 다수의 인원이 한꺼번에 지원하면 합격할 확률이 떨어질테니, 친구들끼리 모여서 ‘너는 어떤애인데, 이 학교의 학문 스타일은 너의 스타일과 잘 안맞는다’라며 치열하게 토론하며 각자 지원할 대학을 정했어요. ‘누가 답을 안 줘도 내가 만들어야한다’는게 전제돼있었죠.

▽최재화 대표
민사고 출신 상당수는 ‘긍정 왕’인거 같아요(웃음).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방에 냉장고가 없었어요.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방법을 고안했죠. 민사고가 위치한 강원도 산의 겨울은 영하로 유지되니까, 운동으로 태권도를 하는 친구들의 태권도 띠로 아이스크림을 묶어 창문에 걸어놨었어요. 이렇게 어느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잡초 같은 생명력이 길러졌답니다. 
●1등 아니라는 깨달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찾아 나서
▽최재화 대표
민사고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내가 1등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래도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보니 수학 시험을 본다는 것은 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랑 경쟁하는 것이었고, 물리 시험을 본다는 것은 물리 올림피아드 수상자랑 경쟁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이 친구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었어요. 저는 수학시험을 보면 뒤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결국 다 내려놓고 서로의 재능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을 하는 계기가 됐지요. 만약 일반고에 진학해서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잘 못하는 과목까지 만점을 받으려 노력했다면 오히려 힘들었을 거예요. 

김수지 쏘카 CIO.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김수지 CIO
매 학년마다 일 등하는 친구들은 처음부터 일등을 하고 조기 졸업을 했어요. 저는 중간정도 했습니다. 자존감을 지키려면 내가 잘하는 것, 내 무기, 내 살길 같은 것들을 빠르게 포착했어야 했습니다. 무엇을 포기한다기 보다는 최적화돼서, 내 무기를 내가 알아서 발굴해서 갈고 닦자고 생각했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건 잘 안했어요. 

▽임수진 파트너
최 대표, 김 CIO 말에 공감해요. 훌륭한 사람들은 참 많아요. ‘난 절대 1등이 아니니’ 나만의 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새로운 선택이나 새로운 길에 대해 열려있게 됐어요.
●열려있는 마인드가 스타트업 업계로 이끌어
▽최재화 대표
저는 원래 국제변호사가 되고싶었어요. 대학 입학을 위해 수시 원서를 낼 때는 정치외교학과나 법학과를 지원했어요. 그런데 다 떨어졌어요. 정시 때 점수에 맞춰 상경계열을 지원했는데 합격하면서 길이 바뀌었죠. 경영학을 배우다보니 비즈니스쪽이 재밌어서 계속 배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유학을 준비해 하버드 MBA를 이수하게 됐죠.

MBA까지는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트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후에 오비맥주에서 마케팅 업무를 맡으면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경험했어요. 그 다음에는 구글코리아에 입사해 유튜브 유저 마케팅을 했고, 그러면서 테크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생겼습니다. 이 분야에 기회가 많다고 느껴 지금 회사인 번개장터로까지 오게 됐어요. 선택을 할 때마다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 

▽김수지 CIO
저는 민사고 입학 전부터 미국의 로스쿨을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추후 미국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두고 대학도 진학했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에서는 일정 이상의 성적(GPA)을 받으면 미국 로스쿨 입학 시험(LSAT)을 안 봐도 추천을 받아서 저희 학교 로스쿨로 진학할 수 있는 특별전형이 있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사나 탐구해보자’라는 생각에 갑자기 휴학하고 NGO단체, 컨설팅, IB, 자산운용사 등 금융계에서 인턴을 했어요. 파이낸스 분야에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해보니 적성에 잘 맞았어요. 우연치 않은 기회에 금융계에 발을 들이게 됐죠. 

저는 원래 하나를 시작하면 진득하게 하는 스타일인데요. 10년이상 외국계 금융계(IB)에 있다보니 도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쯤 됐을 무렵인 2017년 홍콩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인도의 테크기업이 유니콘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다양한 고민과 상황을 고려한 끝에 직접 경험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스타트업씬으로 오게 됐죠. 

임수진 두나무앤파트너스 파트너.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임수진 파트너
고등학교때는 외교관이 되고싶었는데 대학에서 국제정치랑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빠른 속도로 돈이 오가며 세상이 바뀌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대학을 졸업할 땐 홍콩의 한 금융 분야 회사에 합격했어요. 입사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대학 선배와 친구들이 창업한 회사에 잠시 일을 도와주러 인턴으로 근무했어요. 바로 ‘티몬’이었죠. 

대학 다닐 때 사람을 모아서 하는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는데, 재밌게 했거든요. 티몬에 조인해서 일해보니 그때랑 너무 비슷한거예요. 게다가 모의로 하는게 아니라 진짜 비즈니스를 만들어나가는 환경이다보니 임팩트가 크고 제게 와닿았어요. 

‘홍콩 회사에 취직하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급성장하고 있는 회사를 지금 나가면 이런 기회가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홍콩에 안 가고 눌러앉았어요. 당시 엄마와 친구들이 제게 ‘미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한번의 결정을 통해 기회들이 열렸던 것 같아요. 티몬에서는 그렇게 2013년 매각과정까지 함께했죠. 

하지만 외국에서 일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미련이 크게 있었어요. 마침 티몬을 인수했던 회사의 직원이 제게 이직 제안을 해서 싱가포르에서의 2~3년 근무를 포함해 6년을 근무했어요. 재직 2년 6개월여만에 라쿠텐에 해당 회사가 인수되면서 저는 그 다음 스텝을 고민했죠. 대기업이나 금융권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스타트업 대표들이 주변에 많다보니 그것과 연관되면서도 가장 가까운 업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자연스럽게 매일 스타트업을 볼 수 있는 ‘투자’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매일이 새로움·성장·자기주도성이 스타트업 업계의 매력”
▽최재화 대표
하루하루 새롭다보니 어제 했던 일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매일 챌린지해야하는 내용이 바뀌는 것. 이런게 스타트업 업계에 있으면서 느끼는 매력이에요.  

▽김수지 CIO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고, 그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금융권에 있을 때보다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이 큰 매력인거 같아요. 결과가 안 좋으면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야 하는 것이 챌린징하면서도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외국계 IB에 일하면서 국내외 다수의 M&A, IPO 거래를 자문했는데, 발행사로 와서 직접 IPO, 다수의 전략적 인수 및 투자를 집행해보니 경험치가 무궁무진하게 커지는 느낌입니다. 
제3자 입장에서만 지켜보다가, 회사가 성장하면서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도 같이 성장한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임수진 파트너
스타트업 대표들은 인생을 진짜 자기주도적으로 삽니다. 본인이 창업했기 때문에 원할 때 회사를 그만들 수 없어요. 직원에게 월급도 줘야 하고, 투자도 받고, 주주도 고려해야 하는 등 인생을 진짜 ‘갈아 넣습니다’. 그 밀도와 집약 정도가 그 어느 직종보다 높다고 생각해요. 항상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나가는 분들을 만나다보니 보람차요. 

‘내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바꾸고, 내가 하려고 한 게 실제 어떻게 현실로 됐는지’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직업이 이런 사람들을 항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이 업이 되게 특별하게 느껴져요. 이런 환경에 놓여있을 수 있는 것은 되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하경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