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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서 찍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전국 곳곳서 눈물의 발인

입력 | 2022-11-02 18:54:00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공간에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안부전화를 하던 아들이었는데….”

2일 오전 11시 반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한 장례식장.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 A 씨(43·변호사)의 발인이 시작되자 70대 노모 B 씨는 흐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A 씨는 고교생 시절 혈액암에 걸린 형에게 골수이식을 세 번이나 해줄 정도로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들이었다고 한다. 올 9월 부모가 광주 동구 새 아파트에 입주할 때도 상당부분 비용을 낸 효자이기도 했다. B 씨는 “아들은 ‘가정을 지탱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호사가 됐다. 항상 책읽기를 좋아하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울먹였다.

참사 발생 닷새째를 맞으며 희생자 상당수의 발인이 이날 전국 곳곳에서 마무리됐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 고인의 빈자리를 느껴야 하는, 눈물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하루였다.
● 함께 참변당한 친구, 같은 곳서 영면
이번 참사에선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같이 참변을 당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친구 사이인 희생자들의 발인식이 열리기도 했고, 같은 곳에 안장되기도 했다.

부산에선 참사 당시 함께 이태원에 갔다가 숨진 두 친구가 이날 나란히 기장군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20대인 이들은 사고 후 각각 부산과 경기에서 화장이 진행된 뒤 같은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젊은 희생자가 많다 보니 영정사진도 일반적인 장례식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이날 광주 서구에서 열린 대학생 C 씨(25)의 발인에선 최근 여행지에서 찍어 가족에게 보낸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사용됐다. 대학 졸업을 앞둔 C 씨는 사진 속에서 밝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날 대구 수성구 명복공원에서 화장을 진행한 D 씨(24·여)의 영정사진도 환한 표정을 짓고 있어 추모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D 씨의 한 지인은 말없이 수차례 주먹을 쥐었다 폈다.
● 관 끌어안고 통곡, 지켜보던 이들도 눈물

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2022.11.1/뉴스1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에서 치러진 20대 여성 희생자의 화장장은 유가족들의 오열로 가득찼다. 장례식장 관계자가 “화장 전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안내하자 유가족들은 관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다른 장례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인가보다. 너무 딱하다”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슬픔에 침묵만 이어지는 빈소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에 차려진 20대 여성 희생자의 빈소에는 침묵이 가득했다. 발인을 앞둔 유가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바닥을 응시할 뿐, 서로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이를 사랑하는 친구 ○○○‘이라고 적힌 근조화환가 지인들의 슬픔을 대변했다. 희생자의 어머니는 딸의 영정이 빈소를 나가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대구 동구에서 열린 또 다른 20대 여성의 발인에선 관 위에 고인을 기리는 추모의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었다.
● 해외에 있는 유가족 못와 적적한 빈소
외국인 희생자의 발인도 하나씩 진행되고 있다.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에서 진행된 중국인 E 씨(33·여)의 발인은 유가족이나 추모객보다 외교부 및 서울시 공무원 등이 더 많았다. E 씨의 부모는 중국에 있는데, 모친 건강이 좋지 않아 한국에 올 수 없었다고 한다. 근조화환도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E 씨의 자녀는 아직 엄마의 사망 소식을 모른다고 한다. E 씨의 고모는 “조카는 2012년에 한국에 와 아이를 낳고 잘 살았다”면서 “6살 난 아이는 어떻게 하느냐”고 가슴을 쳤다.

외국인의 경우 유가족들이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 희생자보다 비교적 늦게 장례가 치러지다 보니, 상당수가 아직 빈소를 차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