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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칼럼]싱크홀에 빠진 대한민국 정치

입력 | 2022-11-03 03:00:00

북핵 위협에 경제 고통, 국민들 위기 몰렸는데
정치권, 나라이익·국민행복 외면하며 정쟁만
이태원 비극 앞에서 잠시라도 참정치 펼치라



김도연 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1995년, 삼성의 고(故) 이건희 회장은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지적했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지나며 1만 달러였던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가 되었다. 당시 2류였던 기업들 몇몇이 1류 반열에 오른 덕택이다. 그러면 정치와 행정은 국민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특히 정치에 대해선 아쉽게도 매우 냉소적이다. 지하실 바닥 수준으로 알았더니 이제는 싱크홀에 빠져 버렸다는 평가에 더욱 많이 공감할 듯싶다.

올 9월 말부터 북한은 다양한 미사일을 계속 쏴 올리며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장사정포도 쏘았고 전투기를 150대나 동원한 공중 무력시위도 있었다. 해상에서는 북방한계선(NLL)도 침범했다. 7차 핵실험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끝을 모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국 핵폭탄에 의해 인류 최후의 대전쟁, 즉 아마겟돈이 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황제의 지위에 오르며 조만간 대만을 침공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이런 엄중한 국제 정세를 오히려 이용하고 있는 북한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실 핵무기를 지닌 북한의 위협은 한민족 전체의 존망에 연결되는 중차대한 문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민족 공멸(共滅)의 단추를 설마 누를까? 그러나 그는 주민들을 굶기면서도 미사일과 핵무기에 막대한 재정을 퍼부은, 이성적인 사고와는 이미 머나먼 절대 독재자다. 최근 핵 선제 타격을 법제화하기도 했다.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는 않겠다던 방어전략에서 이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정은이 쏘아 올리는 핵무기는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까? 아니면 대한민국 영토를 향할까?

국민의 생명이 걸린 안보가 첫째라면 그다음으로 당장 중요한 문제는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다.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수출 주도로 크게 성장했다. 역대 정부가 체결한 60여 개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우리는 수출을 늘려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는 경쟁적으로 자국 중심주의로 돌아서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수입하는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올 4월부터 매월 계속되고 있는 무역 적자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는 벼랑 끝에 서 있다.

IMF 사태는 참으로 큰 고통이었지만, 그때는 우리만의 문제였기에 오히려 극복이 용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은 전 세계가 겪을 위기다. 고통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각국 정부는 지원금을 쏟아부었고 이제는 그 후유증으로 모두가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고 있다. 대응 전략으로 성큼성큼 올리는 금리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는 존재는 소위 ‘영끌’해서 아파트를 마련한 젊은 세대들일 것이다. 부동산 문제만은 자신 있다고 공언하던 지난 정부를 탓해 무엇하랴. 이들을 위해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안보와 경제가 모두 긴박한 상황인데,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책임진 우리 정치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정치가 엉뚱한 일에만 매달려 있으니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태평양 쪽으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던 당일 새벽, 일본 홋카이도 지방에서는 경보가 울리고 지하철도 일시 정지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를 호들갑으로만 여기는 듯싶다. 다가올 겨울철 위기에 대비해 유럽에서는 실내 난방온도를 제한하며 에너지 배급제까지 검토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대낮처럼 밝힌 산속에서 야간 골프까지 즐기며 살고 있다.

우리 정치는 오로지 선거에 이겨 정권을 잡는 일만이 전부인 듯싶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선출된 정부도 무너뜨리자고 선동한다. 윤석열 정부 퇴진을 위한 중고등학생 촛불집회까지 예고되어 있는데, 그 포스터에 준비물이라고 크게 기재된 ‘깔고 앉을 공책’에 기가 막힌다. 촛불은 스스로의 육신을 태워 주변의 어둠을 밝히는 유용한 존재다. 상대방을 태워 없애는 해로운 흉기가 아니다.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변화하는 상황에서 가장 덜 해롭고, 가장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제발 국가와 국민들에게 유용한 일을 하기 바란다. 조금이라도 덜 해로운 일을 했으면 좋겠다. 우선은 이태원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잠시만이라도 참정치에 임하길 기대한다. 스러진 젊은 생명들에게 삼가 애도를 표한다.



김도연 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