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강행하면서 한·미 금리 차이가 1.0%포인트로 확대됐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아직 갈 길 멀다”며 공격적 금리인상을 시사하면서 이번 달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한국은행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한미 금리 역전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0.5%포인트 인상의 ‘빅스텝’이 필요하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단기 금융시장 자금경색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일 금융시장 등에 따르면 미 연준은 1~2일(현지시간)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3.0~3.25%%에서 3.75~4.0%로 0.75%포인트 인상했다. 미 기준금리가 4%대에 진입한 것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1월 이후 14년 만이다. 9월 미 소비자물가지수(CPI)가 8.2%에 달하자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것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이날 FOMC 정례회의 직후 “금리인상 관련해 여전히 갈 길이 남아있다”며 “최종금리 수준은 이전에 예상한 것보다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9월 점도표에서 제시된 내년 기준금리가 4.6%를 넘어 5%를 넘어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 연준의 최종금리 수준이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에 이번 달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한국은행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당초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는 24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재 3.0%에서 한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 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한미 금리차를 줄이기 위해 한은이 추가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을 높게 내다본 것이다. 미 기준금리가 4%를 돌파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상단 기준으로 우리나라(연 3.0%)보다 1.0%포인트 높아졌다. 한은이 지난달 사상 두번째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금리 역전폭을 0.2%포인트 까지 좁혀 놨지만 다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미 연준이 긴축 속도를 높이게 되면 한·미간 금리 격차가 연말 최대 1.5%포인트까지 벌어질 수 있다. 이는 과거 최대 역전폭과 같은 수준이다.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질 경우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자산가치 하락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또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크게 오를 경우 가뜩이나 높은 국내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 한은은 내년 1분기까지 5%대의 높은 물가 상승세가 지속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미 연준의 최종금리가 당초 전망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외환시장 불안,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우려로 추가 빅스텝 단행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상 두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 10월 금통위에서 주상영, 신성환 위원이 0.25%포인트만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면서 속도조절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전날 공개된 10월 금통위 회의록에 따르면 0.5%포인트 금리인상을 주장한 다수의 위원들은 국내경제 펀더멘털이 견조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금통위원은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그 정도는 과도하지 않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자본유출, 환율 상승을 우려한 선제적 통화정책보다는 상황 전개에 따른 유연한 통화정책이 실물 경제나 물가 경로의 위험관리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0.5%포인트 인상 의견을 낸 금통위원 4명 가운데 향후 속도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보인 위원들이 적지 않다. 한 위원만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해 정책 기조를 긴축적 수준으로 조기 전환해야 한다”며 강한 매파 성향을 보였다. 이에 따라 금융안정을 위한 유연한 통화정책 기조 전환 주장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박정우 노무라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년 1월 0.25%포인트 올려 최종금리가 3.5%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레고랜드발 자금조달 등 국내 금융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어 11월 인상이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이 인상속도를 늦추는 데 다음 회의 혹은 그 다음 회의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해 사실상 12월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며 “미 연준이 12월 0.5%포인트 인상한 뒤 2023년부터 0.25%포인트 베이비 스텝으로 회귀해 1~2차례 추가 인상 뒤 금리인상 사이클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여 한은도 이번 달 가계부채 등 문제로 0.25%포인트 인상하는 등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