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 인근. ⓒ News1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 인근에 어수선한 모습으로 모여있는 시민들의 모습. ⓒ News1
“꼭 알리고 싶은 게 있다.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시민 99%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10월 29일, 당시 현장에서 길 통제를 돕던 여성이 “더는 서로 상처 주지 말자”며 실제 보고 겪은 그날을 자세히 전했다.
참사 당일 남자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은 여성 A씨는 지난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날 상황을 잘 모르시거나 오해하셨던 분들에게 제가 봤던 것들을 알리고 싶다”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그러다 A씨는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구급차들과 인도 바닥에 앉은 여성들을 발견했다. 이때 여성들은 취한 것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원을 그리고 있었고, 경찰은 뛰어다니면서 “선생님,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A씨는 “정말 죄송스럽게도 전 그분들이 과음해서 취한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구급차가 왜 저렇게 많지?’하면서 계속 걸었다”며 “우연히 구급차와 구급차 공간 사이로 길에 누워있는 마네킹을 봤다. 뭔가 홀린 듯이 마네킹을 보는데 소방대원이 달려와 심폐소생술 하는 모습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감이 들지 않아 멍하니 보고 있는데 갑자기 파란 이불을 덮은 사람이 들것에 실려갔다. 구급차가 사라지면서 그곳(참사 현장)이 더 잘 보였고,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며 “왼쪽 인도에는 사람들이 누워있고, 소방대원이 심폐소생술하고 있고, 도로에는 구급차들이 서 있었다. 제가 서 있던 오른편 인도에는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편 가게에서는 신 나는 음악이 나오고 사람들이 춤도 추고 환호도 했다. 정말 해괴망측하고 기괴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상황 파악이 쉽지 않았던 A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태원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사고 장소는 제가 10시쯤에 지나간 곳이었고, 사고는 10시 20분쯤부터 시작됐더라”라며 “길이 없다는 경찰과 시민의 말에 뒤돌아서 반대로 걷기 시작했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도망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A씨가 남자친구와 나서서 길을 막기 시작할 때는 몇몇 경찰관만 함께 했지만, 이후 형광 옷을 입은 외국인, 자주색 옷을 입은 시민 등 점점 길 통제를 돕는 인원이 늘어났다고.
그는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사고가 나서 길이 없다는 말에 사람들은 뒤돌아서 갔다”며 “분명 춤추고 노는 사람들도 처음엔 있었지만 나중에 사고 사실을 알고 나서는 대부분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언제 꺼졌는지는 모르지만 가게들도 노래를 껐다. 물론 다른 곳의 상황은 제가 보지 못했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제가 있던 그 길에선 그랬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이곳에서 경찰이 대거 투입되기까지 3시간가량 길 통제를 도왔다고 밝혔다. 그는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제가 본 건 길 없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돌아간 사람들, 인력이 부족해 보이자 기꺼이 길 통제를 도운 한국인 및 외국인, 말이 안 통하는데도 심폐소생술(CPR) 시늉을 하니 알겠다고 뒤돌아 간 사람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장난감 칼을 들고 차도로 뛰어가 길을 터준 사람들, 휴가 나온 군인이고 CPR 할 줄 아는데 도와도 되냐는 사람들, 급히 달려온 의료진, CPR은 할 줄 모르지만 뭐라도 도울 게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물론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3시간 가까이 길 통제를 하면서 본 이상한 사람은 1%였고, 나머지 99%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기 계셨던 모든 분이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신 것뿐”이라고 적었다.
동시에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고 마음 아픈 피해자들, 제가 간발의 차로 사고를 피했던 것처럼 당신들께도 그 간발의 차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수천 번, 수만 번 한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