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웅환 한국벤처투자 신임 대표 “경제 침체기, 과감한 규제개선 필요 벤처 키운 핀란드 벤치마킹을 협업-네트워크의 DNA 심어야”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투자 침체기를 국내 벤처업계의 전화위복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벤처는 침체기에 있는 한국 경제가 ‘J커브’를 그릴 수 있도록 할 핵심 원동력입니다.”
유웅환 한국벤처투자 신임 대표(51)는 “한국은 지금 J커브에 성공하느냐,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맞느냐의 갈림길에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한국벤처투자 본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유 대표는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와 경기침체로 혹한기를 맞고 있는 한국 경제계에 대해 “우린 일본을 반면교사 삼고 노키아 이후의 핀란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경제의 침체는 소니로 대표되는 전자기업들이 쇠락한 뒤 ‘작고 강한 기업’들이 탄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글로벌 1위 휴대전화 기업이었던 노키아가 무너진 뒤 오히려 경제가 더 건강해진 핀란드와는 상반된다는 것이다. 유 대표는 “노키아가 지원한 창업 자본과 인프라, 민관학 협력이 수많은 벤처의 씨앗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핀란드는 2015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에서 ‘국민 1인당 스타트업 수가 가장 많은 나라’로 꼽힐 정도로 벤처 강국이 됐다. 모바일 게임 기업인 슈퍼셀과 로비오 등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고 간 시점인 만큼 보건, 환경, 전쟁 등 인류 위기에 대응할 벤처 생태계를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도 짚었다. 유 대표는 “기업들 중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앞선 곳들과 함께 글로벌 차원의 임팩트 투자 모펀드 구성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가 경쟁국들보다 먼저 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려면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자본이 국내 벤처업계로 흘러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교되는 한국 벤처환경의 한계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 대표는 “벤처업계의 허리가 약하다는 게 우리의 약점”이라며 “통상 기업공개(IPO)까지 미국 벤처들보다 5년 이상 더 걸리는데도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지원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한 엑시트(자금 회수) 찬스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창업 커뮤니티에서 유대계나 중국계에 비해 한국인 네트워크는 미미한 수준”이라며 “우리도 경쟁과 성과만 강조하는 문화를 넘어 협업과 네트워크의 DNA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
유 대표는 KAIST에서 전기·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인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주요 기업에 두루 몸담았다. 최근에는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으로 활동하며 반도체 산업 성장 전략을 자문했다. 인텔 수석매니저 당시 사내 창업 스타트업 지원 업무를 맡아 실리콘밸리 창업계를 두루 경험했으며 SK텔레콤 오픈이노베이션 담당 임원으로 다수 벤처 기업 성장에 기여했다. 이런 경력을 높이 산 한국벤처투자는 지난달 2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유 대표의 선임을 확정했다. 유 대표는 향후 3년간 한국벤처투자 8대 대표를 맡게 된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