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식품 62% 점자표기 없어… 시각장애인들 “불편 넘어 위험”

입력 | 2022-11-04 03:00:00

식품 점자 표기법 국회 계류 중
의약품은 2024년부터 의무화 시행
오늘 ‘한글점자의 날’… “개선돼야”




“내가 먹는 음식인데 제품명뿐만 아니라 유통기한도 모른 채 구매해야 해요. 유통기한이 지난 두유인지 모르고 먹었다가 탈이 난 적도 있습니다. 식품에 점자 표기가 없는 건 불편을 넘어 시각장애인을 불안하고 위험하게 만듭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시각장애인 조모 씨(56)의 말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식품의 60% 이상에 제품명이나 유통기한, 성분 등이 점자로 표기돼 있지 않고, 표기가 있더라도 가독성이 떨어져 시각장애인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이 1926년 한글점자를 만든 것을 기념하는 ‘한글점자의 날’(4일)을 맞아 국내 식품 점자 표기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법상 식품에는 점자 표기 의무가 없다. 식품에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이 때문에 시판 중인 식품 상당수에서는 점자 표기를 찾을 수 없다. 올해 한국소비자원이 컵라면, 우유 등 총 321개 제품을 조사한 결과 200개(62.3%) 제품에 점자 표기가 없었다. 시각장애인 김모 씨(50·여)는 “구매한 라면이 일반라면인지 짜장라면인지 집에 와서 끓여봐야만 알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의약품은 사정이 다르다.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4년부터 의무화된다.

점자가 있더라도 가독성이 크게 떨어진다. 시각장애인 정성훈 씨(36)는 “점자의 높이와 간격이 표준 규격에 맞지 않아 무슨 글자인지 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식품은 포장재 특성상 점자 표기가 어려운 점도 난제다. 포장재가 단단한 박스인 의약품과 달리, 식품은 비닐로 포장된 경우가 많다. 점자를 인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친환경’이 중요해지면서 식품 포장재를 얇게 만드는 추세라 점자를 표기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안으로는 음성인식이 가능한 QR코드를 통해 식품 정보를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포장 재질별로 점자를 표기할 방안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소설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