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와 KB손해보험의 경기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바로 우리카드 미들블로커 최석기(36)의 500 블로킹 기록이다. 전날까지 499개를 기록하고 있던 최석기는 이날 1세트 15-14에서 상대 팀 한성정의 퀵오픈을 막아내면서 500개 고지에 올랐다. 남자부 통산 12번째 기록이다.
남들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석기는 500블로킹 기록 보유자 중 가장 많은 361경기 만에 기록을 세웠다. 최소 경기 기록 보유자인 동갑내기 한국전력 신영석(171경기)의 2배가 넘는 경기가 필요했다. 블로킹 전담 포지션이 아닌 오퍼짓 스파이커 한국전력 박철우(37·354경기)보다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남들보다 천천히, 누구보다 꾸준히 걸었다. 지난 최석기의 배구 인생도 그랬다. 2007~2008시즌 한국전력에 2라운드 1순위로 지명된 최석기는 선수 생활동안 무릎 수술만 4차례 받으면서 코트를 밟았다가 밀려나길 여러 번 했다. 쟁쟁한 1986년생 동갑내기 미들블로커 신영석, 박상하(현대캐피탈), 진상헌(OK금융그룹) 등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3일 경기 뒤 코트에서 만난 최석기는 기록 달성의 기쁨보다 팀 패배의 아쉬움을 말했다. “일단 팀이 이기지 못해 아쉽다. 결국 오늘 (500블로킹을 달성한) 블로킹 하나밖에 성공하지 못해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기록이 주어진 것 같다. 아직은 한참 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 시즌 최석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주전 미들블로커인 김재휘(29)가 최근 검진에서 대동맥류 확장 진단을 받아 수술받게 되면서 사실상 시즌아웃이 된 상황. 최석기는 “재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유효 블로킹이나 속공에도 더 신경을 쓰고 범실 없이 팀에 믿음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라는 각오를 다졌다.
최석기는 “부상 때문에 오랜 시간 (남들의) 뒤에 있었고 많은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기회에 목말라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준비하면 언제든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나 또한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500블로킹을 위해 2804번을 뛰어오른 최석기는 그렇게 또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